‹ 목록으로 늑대신님, 밤마다 이러깁니까

3화

최노인의 오두막은 초원 끄트머리, 작은 언덕 아래 자리한 낡은 목조 건물이었는데, 지붕은 짚으로 엮여 있었고 벽 곳곳에 갈라진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 밤이면 유독 서늘했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가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몸을 웅크렸는데, 그럴 때마다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스치고 지나가곤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지낸 지 나흘째 되던 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양 떼를 몰아야 했다. 창밖이 채 밝아지기도 전, 닭 울음소리보다 먼저 최노인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해 뜨기 전에 나가야 풀이 이슬을 머금고 있어서 양들이 잘 뜯어 먹는 겨. 게으름 피우면 배곯는 건 니가 아니라 저것들이여." 목양이라는 게 겉보기엔 그저 양들 뒤를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니는 일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 양들이라는 것들이 어찌나 제멋대로인지, 이쪽으로 몰면 저쪽으로 흩어지고 저쪽으로 몰면 절벽 쪽으로 기어이 기어가려 드는 통에, 첫날부터 나는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초원을 뛰어다녀야 했다. 어제는 발을 헛디뎌 진흙탕에 무릎까지 빠졌었고, 그제는 새끼 양 한 마리를 쫓아가다가 가시덤불에 팔뚝이 온통 긁혔었다. 그리고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저짝! 저짝으로 새는 거 안 뵈냐! 아이고, 저 자슥이 절벽 쪽으로 기어가는디 뭐하고 서 있는겨!" 나는 헐레벌떡 달려가 양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놈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방향을 틀어 반대편으로 내빼버렸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최노인은 언덕 위에서 팔짱을 낀 채 혀를 끌끌 차고만 있었다. "이 멍청한 놈아! 양을 몰 때는 소리로 겁을 줘야지, 그렇게 손짓만 해대면 저것들이 뭘 알아듣겠는겨!" 최노인의 불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탁! 지팡이가 내 종아리를 후려쳤다. 억눌린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자세를 잡았지만, 속으로는 '이 영감, 진짜 사람을 개 취급하네...' 하는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개 취급이라니, 생각해보면 나는 밤마다 진짜 늑대가 되는 몸이었으니 어쩌면 이 노인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는 자조 섞인 생각이 뒤늦게 따라붙었다. 종아리를 문지르며 다시 양 떼를 향해 뛰어가려는 찰나였다. [네 반응 속도가 느린 탓이다. 내가 도와줘도 되겠나?] 머릿속에서 들려온 아사의 물음에 나는 흠칫했다. 그녀가 낮 시간에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든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밤이 되어 몸이 뒤바뀔 때나, 혹은 위험한 순간에만 짧게 한마디씩 던지던 게 전부였는데. "뭘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지금 몸은 내 것인데." [감각을 조금 나눠줄 뿐이다. 늑대의 눈과 귀를.]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묻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저 짐승이 또 절벽으로 향하고 있어.] 나는 대답할 틈도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순간적으로 시야가 확장되는 듯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흐릿하게만 보이던 양 떼의 움직임이 갑자기 선명해졌고, 저 멀리 풀숲 사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작은 짐승의 움직임까지 감지될 정도로 청각도 예민해졌다. 바람에 실려 오는 풀 냄새, 축축한 흙 냄새, 그리고 양들 특유의 비릿한 체취까지도 코끝을 스치는 듯했는데, 이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통에 나는 잠시 어지러움마저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 어지러움도 잠시, 그 순간부터 나는 마치 원래 그런 능력을 타고난 사람처럼 양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앞질러 막아설 수 있었다. 몸을 틀기 직전의 다리 근육 떨림, 귀를 쫑긋 세우는 방향, 그 작은 신호들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더 이상 양들 뒤를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앞을 미리 가로막는 쪽이 되어 있었고, 최노인의 지팡이질도 부쩍 줄어들었다. "오호... 제법인디?" 최노인이 처음으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걸 들으며, 나는 묘한 뿌듯함과 함께 이 저주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팡이가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어이, 총각. 그거 뭔 재주여? 갑자기 눈빛이 딴사람 같던디." 최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렇게 묻는 통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그, 그냥... 감이 좀 왔나 봐요." "감이라... 허, 별난 놈일세." 최노인은 더 캐묻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는 뭔가 미심쩍은 기색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며 다시 양 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그녀를 만났다.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살짝 기울기 시작할 무렵, 양들이 풀을 뜯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나는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풀숲이 부스럭거리는가 싶더니, 튀어나온 건 눈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늑대 한 마리였다. 몸집은 일반 늑대보다 조금 작았지만, 날렵한 몸놀림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양 떼 중 한 마리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여간 사나운 게 아니었다. "으악, 요수다!" 최노인이 다급하게 외치며 지팡이를 휘둘렀지만, 그 백색 늑대는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하고는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늑대의 눈이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늑대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우뚝!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사나웠던 짐승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크릉... 크르르릉. 낮게 울리던 위협의 소리가 점점 잦아들더니, 결국 그 백색 늑대는 마치 무언가에 눌린 것처럼 몸을 낮추고 배를 드러내며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냄새를 느낀 모양이군. 아직 어린 개체지만, 서열 본능은 정확하다.] 아사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자부심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뭐야, 얘가 왜..." [내가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늑대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본 거다. 저것은 이제 너를, 아니 나를 알파로 인정한 거야.] "...그럼 이제 얘가 우릴 공격 안 한다는 거야?" [적어도 지금 당장은. 다만 저것도 살아있는 짐승이니, 방심은 하지 마라.] 아사의 마지막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지만, 눈앞에서 배를 드러낸 채 낑낑거리는 늑대를 보고 있자니 그 경계심도 금세 무뎌지고 말았다. 최노인은 그 광경을 보며 입을 떡 벌린 채 한참을 서 있다가, 이내 헛기침을 하며 지팡이를 거두었다. "허어, 요상한 놈일세... 요수한테 알파 취급을 받다니. 내 평생 살면서 저런 꼴은 첨 보네." "그, 그러게요..." "총각, 자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여?" 최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렇게 묻는데,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 노인이 뭔가를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다행히 최노인은 더 캐묻지 않고 혀를 끌끌 차며 오두막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부터 그 백색 늑대는 이상하게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언덕 주변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멀찍이서 눈치만 살피던 녀석이 하루 이틀 지나자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고, 사흘째 되던 날에는 아예 내 발치에 배를 깔고 엎드려 낮잠을 자기까지 했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 늑대에게 '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그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라 그저 눈처럼 새하얀 털이 첫눈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설이야." 내가 부르자 설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나를 향해 총총 뛰어왔고, 그 모습이 어찌나 순진해 보이던지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죽었다가 낯선 몸으로 눈을 뜬 지 고작 나흘, 밤마다 늑대로 변하는 저주를 짊어진 채 살아야 하는 처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불행이 아주 잠시 잊혀지는 기분이었다. 설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붉게 물든 노을이 초원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오늘 밤도 어김없이 저 노을이 완전히 가라앉으면 내 몸은 또다시 늑대로 뒤바뀔 것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슬슬 준비해야 할 거다.] 아사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뭘?" [오늘 밤은... 조금 다를 것 같다.] 그 말과 함께,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낯선 늑대의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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