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야영지로 돌아온 원정대는 대번에 갈라졌다.
불을 피우기도 전이었다. 짐을 내려놓기도 전이었다. 다들 동굴에서 본 게 눈앞에 아직 어른거리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돌아가야 합니다. 혈랑왕이면 우리 여섯으론 못 해요."
동료 하나가 소리 높였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른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건우만 팔짱을 끼고 대답이 없었다.
"저급 마수라고 했잖습니까. 처음 정보 받을 때 저급이라고."
"정보가 틀린 걸 어쩌라고. 눈으로 봤잖아. 저게 저급이면 세상에 상급은 뭔데."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돌아가자고요!"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나는 짐 옆에 앉아 물통을 열었다. 목이 탔다. 물을 넘기면서도 다들 하는 말을 그냥 듣고만 있었다. 끼어들 타이밍이 아니었다.
"임 대표, 결정하시죠."
한 명이 다그쳤다. 임건우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동굴 쪽을 보고 있었다. 붉은 눈, 그 짐승 냄새, 포효 한 번에 나무가 흔들리던 감각이 아직 남았을 텐데도 표정에 흔들림이 없었다.
"···강행한다."
순간 야영지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불씨가 타는 소리까지 크게 들릴 정도였다.
"미쳤어요? 저급인 줄 알고 온 건데 왜 강행을 해요."
"이미 여기까지 온 거, 정보료로 받은 선금만 해도 위약금이 무는 게 더 크다."
"목숨보다 돈이 더 큽니까 지금?"
"돈이 없으면 목숨도 소용없다. 여기서 발 빼면 우리 다섯이 물어야 할 위약금이 얼마인지 알아? 계약서 다시 읽어봐라."
돈 얘기가 나오니 다들 입을 다물었다. 방금까지 목숨을 걸고 소리치던 사람들이 계약서 조항을 떠올리며 조용해지는 게 웃겼다. 세속적인 이유가 목숨값보다 앞선다는 게 어이없었지만, 나도 남 얘기할 처지는 아니었다. 이번 원정 끝나면 받을 돈으로 겨울 장작을 사려고 했으니까. 벌써 몇 번이나 계산을 해뒀다. 장작값에 밀린 방값에 조금 여유 있으면 겨울 내복도.
'너도 참 대단하다. 짐승 눈 마주치고 온 판에 장작값 계산하고 있냐.'
'너는 안 하냐. 그럼.'
영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도 나름 대답이었다.
"저는 반대예요."
내가 손을 들었다. 다들 나를 쳐다봤다. 짐꾼이 왜 끼어드나 하는 눈빛들이었다.
"저급이면 나섰겠지만, 저건 아니잖아요. 여섯이 죽으면 위약금이 무슨 소용이에요. 위약금 안 물려고 다섯이 죽으면 그게 이득이에요?"
"넌 뒤에서 짐만 나르랬지, 발언권 준 적 없다."
임건우가 딱딱하게 잘랐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나도 더 말을 얹지 않았다. 어차피 내 발언권 따위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게 아니었다.
그 순간 동료 둘이 짐을 챙겨 등을 돌렸다. 배낭 끈을 조이는 손이 빨랐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마음이 바뀔까 서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저희는 빠지겠습니다."
"이 새끼들이-"
"임 대표님이랑 죽을 이유는 없잖아요. 저희도 살아야죠."
"위약금은 어떡하고!"
"살아야 위약금도 물죠. 죽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말은 맞았다. 아주 정확하게 맞아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임건우도 그걸 아는지 더 붙잡지 않았다. 그저 노려보기만 했다.
결국 남은 건 임건우와 나, 그리고 남기로 한 동료 하나뿐이었다. 남은 동료는 얼굴이 하얗게 뜬 채로 검 손잡이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도 겁먹은 게 뻔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발을 떼지 못했다. 계약금 때문인지,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랐다.
사냥꾼 무리가 이렇게 쉽게 균열이 갈 줄은 몰랐다. 목숨이 걸린 순간 사람들이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릴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사람 목숨보다 돈이 앞서는 순간을 목격하는 건 전생에서도 흔했지만, 그게 여기서도 똑같다는 게 새삼 헛웃음 났다. 세계가 바뀌어도 사람 마음은 안 바뀌는구나.
"도윤아, 너도 빠지려면 지금 빠져라."
임건우가 말했다. 목소리에 억지스러운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하게 들렸다. 진짜 자신 있는 사람은 저렇게 말 안 한다.
"빠지면 위약금은 안 물어요?"
"넌 정식 계약이 아니니 상관없다."
계산이 빠르게 돌았다.
여기서 도망치면 안전은 확보되지만 손에 쥐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정보료도, 경험치도, 아무것도. 다시 도시로 돌아가면 남는 건 밀린 방값과 다가올 겨울과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뿐이다.
남으면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아직 성신검술 전반부를 익힌 지 두 달, 검기 흉내라도 낼 만한 감이 조금씩 붙는 참이었다. 실력은 실전에서만 자란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었다. 이론만 파고들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검을 뽑고 진짜 죽음 앞에 서봐야 늘어나는 감각이 있었다.
위험한 도박이지만, 실전 경험이 절실하기도 했다.
'남지 마라.'
영감이 짧게 말했다. 평소처럼 능글맞은 어투가 아니었다. 단호했다.
'왜, 무서워?'
'무서운 게 아니라 계산이 안 맞는다. 혈랑왕은 저급이 아니다. 최소 중급 최상위, 어쩌면 상급 하위권이다. 셋이서 붙을 상대가 아니야.'
'그럼 지금 도망가면?'
'지금 도망가는 게 맞지.'
'그럼 나는 뭘 얻는데.'
'목숨.'
'그거 말고.'
영감이 잠깐 말이 없었다.
'···너 진짜 미쳤구나.'
"···남을게요."
'너 미쳤구나.'
영감이 진지하게 말한 건 처음이었다. 평소 같으면 능글맞게 놀리거나 회유하려 들었을 텐데, 이번엔 그럴 여유조차 없다는 듯 짧게 뱉고 입을 닫았다. 그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임건우는 잠깐 나를 쳐다봤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네 목숨이다."
"알아요."
더 긴 말은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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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앞에 다시 섰을 때, 혈랑왕은 이미 밖으로 나와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올 걸 알고 기다린 듯했다.
동굴 입구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공터, 회색 털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몸집이 다시 봐도 비현실적으로 컸다. 사냥개 정도가 아니라 작은 말 한 마리는 될 법한 크기였다.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불씨처럼 타올랐다.
"온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남은 동료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임건우가 검을 뽑으며 신호를 보냈다. 손목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저 사람도 사실은 무서운 거다. 위약금이니 뭐니 앞세웠지만, 결국 이 자리에 서면 다들 똑같이 무섭다.
나도 검을 뽑았다. 검원기를 끌어올리자 손끝이 저릿했다. 두 달 배운 게 이런 순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심장 뛰는 거 들리냐.'
'들려. 조용히 좀 해봐.'
'조용히 하라고? 지금 상황에?'
순간, 혈랑왕의 붉은 눈이 나를 향했다.
정확히,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를.
등줄기로 서늘한 감각이 훑고 지나갔다. 짐승의 시선이라는 게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마치 눈빛 자체에 무게가 있어서, 그 시선에 닿는 순간 몸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놈이 낮게 으르렁거리다 갑자기 등줄기 털을 곤두세우며 포효했다. 그 포효에 맞춰 주변 공기가 통째로 휘몰아쳤다. 나뭇잎과 흙먼지가 회오리처럼 솟아올랐다. 근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임건우와 남은 동료가 팔로 얼굴을 가렸다.
"저게 왜 저래?"
임건우가 소리쳤다. 나도 몰랐다. 놈은 다른 둘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내게로 방향을 틀었다. 마치 다른 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왜 나만-"
말을 끝맺을 틈도 없었다. 놈의 몸이 바람을 타고 활처럼 튀어 올랐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회색 털 사이로 드러난 이빨이 눈앞에 가득 찼다. 침이 뚝뚝 떨어지는 게 슬로모션처럼 눈에 박혔다.
검을 들어 올릴 시간도, 뒤로 물러설 시간도 없었다.
도망칠 곳도, 생각할 틈도 없었다.
[찾았다.]
놈이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짐승의 울음이 아니라 또렷한 말이었다.
내 귀를 의심할 틈조차 없었다. 그 목소리가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순간, 세상이 통째로 멈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