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사당 안은 향내와 먼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에 곰팡이 냄새까지 섞여서, 숨을 들이켤 때마다 목구멍이 칼칼했다. 강무헌은 낡은 목갑을 바닥에 내려놓고 나를 마주 앉혔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목갑 뚜껑을 여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사람도 떨 때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팔 년을 봐온 사람인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신기했다.
"오늘부터 성신검술을 전수한다."
"그게 뭔데요?"
"우리 가문의 유산이다. 별의 기운을 담는 검술이지."
말이 짧아서 정보가 부족했다. 별의 기운이라니, 그게 정확히 뭘 뜻하는 건지 하나도 안 잡혔다. 하지만 강무헌이 저렇게 먼저 입을 열어 뭔가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팔 년 동안 그는 늘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했지, 스스로 말을 늘어놓는 법이 없었다.
"가문의 유산이면 왜 이제야 꺼내는 건데요."
"때가 아니었다."
"그럼 지금은 때가 됐다는 거예요?"
강무헌은 대답 없이 목갑을 열었다. 낡은 죽간이 나왔다. 대나무 조각을 실로 엮은 게 얼마나 오래됐는지, 실 색깔이 거의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글자가 빽빽했다.
"여덟 해 동안 검원기도 못 만드는 놈한테 검술서를요?"
내 말투에 비아냥이 좀 섞였다. 어차피 이젠 존댓말이고 반말이고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존댓말을 쓰고 그 안에 가시를 심는 게 편했다.
"검원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뭐가 문제였는데요?"
강무헌이 죽간의 첫 장을 펼쳤다. 별자리 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 세로로 촘촘히 호흡법이 적혀 있었다. 글씨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뜻을 짚어내려니 머리가 아렸다.
"단전이 아니라 심장 아래 세 치를 봐라. 거기가 네 시작점이다."
순간 뭔가 딸깍, 맞아 들어가는 감각이 있었다. 여덟 해 동안 단전만 뒤졌는데, 애초에 위치가 틀렸다니. 그 팔 년 동안 새벽마다 배를 부여잡고 눈을 감고 있던 시간들이 통째로 헛짓거리였다는 소리였다.
"그걸 이제 말해주면 어떡해요."
"몰랐으니 말 못 했다."
"몰랐어요?"
"확신이 없었다."
확신이 없어서 팔 년을 그냥 지켜본 거라니. 억울함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지금 화내봐야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심장 아래 세 치, 라는 그 말만 되새겼다.
호흡을 따라 기운을 끌어올리자 배 속 깊은 곳에서 뭔가 뜨겁게 뒤틀렸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뜨겁다기보다는 아렸다. 마치 오래 잠들어 있던 근육이 갑자기 깨어나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랄까. 코끝이 시큰거리더니 곧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괜찮은 거예요?"
손등으로 코를 훔치며 물었다. 손등에 묻은 피가 생각보다 많아서 순간 아찔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당연한 반응이라기엔 너무 태연했다. 사람이 코피를 쏟는데 저렇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태연할 수가 있나. 강무헌은 손수건을 던져주고는 다시 죽간을 짚었다.
"다시."
"방금 코피 쏟았는데요?"
"다시 해라."
그 한마디에 더는 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냥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덜 아팠다. 세 번째는 그보다 또 나았다. 몸이 뭔가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부터 나흘간 나는 사당에 틀어박혀 호흡법만 반복했다. 밥도 사당 안에서 먹었고, 잠도 그 자리에서 앉은 채로 쪽잠을 잤다. 강무헌은 하루에 두어 번 들여다보고는 자세를 고쳐주거나 짧게 한마디씩 던지고 사라졌다.
"어깨 내려라."
"턱 당겨라."
"호흡 짧다."
지적은 짧고 무자비했지만, 그 지적을 따라 자세를 바꾸면 확실히 뭔가가 달라졌다. 첫날엔 반나절을 앉아 있어도 배 속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둘째 날엔 열기가 스쳤다가 금방 사라졌다. 셋째 날엔 열기가 좀 더 오래 머물렀다.
나흘째 밤, 처음으로 검원기라는 게 배 속에서 응어리져 도는 감각을 느꼈다. 뜨거운 실 뭉치가 배 안쪽에서 뭉글뭉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감동보다는 억울함이 먼저 몰려왔다. 여덟 해를 헛되이 보낸 게 저 몇 마디 때문이었다니. 팔 년 동안 매달렸던 방법이 완전히 잘못된 자리였다는 걸 확인하니 웃음이 나오려다 말았다.
'재능 없다고 그렇게 우겨댈 땐 언제고.'
영감이 낄낄거렸다.
'네가 어디를 봐야 하는지도 몰랐던 놈이 재능 운운할 처지는 아니지 않느냐.'
"영감님도 몰랐잖아요."
'몰랐다는 말은 안 했다.'
"몰랐으면서 왜 말 안 해줬어요?"
'재밌었으니까.'
그것도 짜증났지만, 배 속에서 도는 열기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은 확실히 좋았다. 팔 년 만에 처음으로, 뭔가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다음 열흘째였다. 열흘 동안 나는 하루하루 검원기를 다루는 감을 익혀갔고, 강무헌은 매일같이 와서 자세를 고쳐줬다. 그런데 열흘째 되는 날 아침, 강무헌이 사당에 들어오면서부터 낌새가 달랐다. 평소처럼 목갑을 열지 않았다. 대신 등에 짐을 지고 있었다.
"당분간 못 온다."
짐이라고 해봐야 낡은 배낭 하나였지만,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 배낭을 짊어진 채 사당에 들어왔다는 것부터가 뭔가 이상했다.
"어디 가시는데요?"
"멀리."
"얼마나요?"
"모른다."
대화라기보단 통보였다. 이럴 때 존댓말이고 반말이고 소용이 없다는 걸 안다.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강무헌이 짐을 다 챙기는 걸 지켜봤다.
"뭐 때문에 가는 건데요?"
"물을 필요 없다."
"무슨 일 생긴 거예요?"
"물을 필요 없다."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들으니 오히려 확신이 섰다. 뭔가 생긴 게 맞았다. 강무헌은 짐을 다 꾸리고 나서야 목갑 속 죽간을 내밀었다.
"이건 놓고 간다. 뒷부분은 스스로 찾아라."
"찾으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찾으면 안다."
죽간을 받아서 펼쳤다. 앞의 절반은 빽빽한 글자였고, 뒤의 절반은—.
비어 있었다.
먹으로 지운 흔적도 아니고, 원래 안 쓴 것도 아니었다. 마치 종이 자체가 통째로 도려내진 것처럼 매끈하게 비어 있었다. 손끝으로 그 빈 자리를 문질러봤다. 결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 결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적힌 적 없는 것처럼.
"이거 왜 비어있는데요?"
강무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등을 돌려 사당 문을 나섰다. 나는 죽간을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무헌 씨."
존댓말도 소용없어서 이름을 불렀다. 그는 잠깐 멈춰섰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등이 문 앞에 걸린 햇빛에 반쯤 걸려 있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뒷부분도 없는데."
"찾아라."
"뭘 어디서 찾는데요."
강무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 발짝 더 문 쪽으로 다가섰다. 나는 죽간을 꽉 쥔 채로 그의 뒷모습을 봤다. 팔 년을 봐온 등인데, 그날은 뭔가 다르게 보였다. 조금 더 좁고, 조금 더 지쳐 보였다.
"살아 있어라."
그 한마디를 남기고 정말로 떠났다. 뒤도 안 돌아보고, 인사도 없이, 그냥 그 한마디만 남기고 사당 문턱을 넘어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완전히 끊겼다.
사당엔 나와 죽간만 남았다. 비어 있는 후반부를 손으로 몇 번이나 훑어봤다. 감촉조차 매끈했다. 누군가 일부러 지운 흔적이라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왜 뒷부분을 지웠을까. 강무헌 본인이 지웠을 수도 있고, 애초에 다른 누군가가 지웠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빈 죽간을 앞에 두고 앉아 있으니, 팔 년 동안 매달렸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과, 이제 겨우 시작점을 찾았다는 사실과, 그 시작점을 가르쳐준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재밌게 됐구나.'
영감이 중얼거렸다.
재미없어서 나는 대답도 안 했다. 대신 죽간의 빈 자리를 다시 한번 손으로 쓸어봤다. 매끈한 감촉 뒤에, 뭔가가 남아 있어야 할 자리였다. 그 자리를 찾아내라는 말이, 팔 년 만에 겨우 잡은 시작점을 다시 놓아버리라는 말처럼 들려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