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숲길은 습했다.
발밑에서 마른 잎이 부서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는 흙과 썩은 나무 냄새가 섞인 듯 텁텁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드는 빛마저 흐릿해서, 대낮인데도 저녁 무렵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움직여."
안이현이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손가락 두 개를 세우고 아래로 내리는 동작.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일단 걸음을 늦췄다. 앞장선 그의 등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넓은 어깨 위로 검자루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뒤를 따랐다.
발끝으로만 걷는 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 몸이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무섭다는 감정보다 앞선 건 낯섦이었다. 이런 숲, 이런 침묵, 이런 동행. 전부 처음이었다.
숲이 갈라지는 곳에서 첫 번째 마수가 나타났다.
낮게 웅크린 회색 짐승, 개보다는 크고 늑대보다는 뭉툭한 형체였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콧등에 침이 흘러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저건 흔한 종이야."
한서준이 나직이 말했다. 목소리에 여유가 묻어 있었다. 마치 산책하다 만난 들개를 설명하는 투였다.
안명희가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붉은 빛이 뭉쳐졌다. 그 빛이 점점 커지면서 열기가 이쪽까지 느껴졌다.
[流火彈 발현]
불덩이가 짐승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짐승이 그대로 튕겨 나가 나무에 처박혔다. 나무껍질이 부서지며 파편이 흩날렸다.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났다.
안명희는 표정 변화도 없이 손을 거뒀다. 마치 파리를 잡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 정도면 등급 없어도 참여만 하면 되겠네."
그녀가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구분이 안 됐다.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두 번째, 세 번째 짐승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됐다. 안이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짐승의 몸이 반투명하게 흔들렸다.
[안이현 - 위상흔들림 발현]
검이 짐승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짐승의 몸 자체가 일순간 존재를 잃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화면이 깜빡이는 것 같은, 이 세계의 법칙에서 잠깐 미끄러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서걱.
소리도 없이 짐승이 쓰러졌다.
"신기하네요."
내가 중얼거리자 안이현이 씩 웃었다. 이 상황에서 웃을 여유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게 내 등급 능력이야. 중급이지만 쓸모는 많아."
그가 검을 어깨에 걸치며 덧붙였다.
"존재를 흔드는 거지. 완전히 지우는 건 아니고, 잠깐 흔들어서 반응을 못 하게 만드는 거야. 그 틈에 베면 끝."
설명을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손에 든 조잡한 단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무기였다. 손잡이 감촉조차 낯설었다.
"저는 뭘 해야 돼요?"
"일단 지켜봐. 위험하면 부르고."
한서준이 대답했다. 그 대답이 오히려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는 것만큼 불안한 일이 없었다. 손이 계속 근질거렸다. 뭔가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럼 저는 그냥 짐인 거네요."
내가 자조적으로 말하자, 안명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짐이 아니라 관찰자. 다르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줄어들었다. 대신 정적이 짙어졌다. 발소리마저 흡수되는 것 같은, 이상한 무게가 공기에 깔렸다.
"이상하네."
안명희가 걸음을 멈췄다.
"3구역은 원래 이렇게 조용하지 않은데."
그녀의 눈이 좁아졌다. 뭔가를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한서준도 발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나뭇가지 사이, 그늘 진 바닥, 멀리 보이는 능선까지 훑고 지나갔다.
"보통은 이 시간대에 소형 마수들이 몰려다녀야 정상이야."
"그런데요?"
"안 보여. 한 마리도."
[구역 이상 감지: 등급 예측 실패]
시야 한쪽에 낯선 문구가 떠올랐다. 붉은 글씨였다.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나만 보이는 건지, 다들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저거 봤어요?"
내가 묻자 세 사람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세 개의 시선이 한꺼번에 꽂히는 느낌이 이상했다.
"뭘."
한서준의 표정이 굳었다.
"문구요. 등급 예측 실패라고."
안이현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시야엔 안 떴어."
순간 침묵이 흘렀다.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안명희가 낮게 중얼거렸다.
"등급 미배정한 애 시야에만 뜨는 문구라면."
"뭔데요."
"위험 지표야. 원래 등급으로 예측 안 되는 대상이 근처에 있다는 뜻."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비아냥이 사라진, 처음 듣는 어조였다.
"그럼 저는 왜 그게 보이는 거예요? 등급이 없어서요?"
"몰라. 이론상으로는 등급 시스템이 예측 못 하는 걸, 등급 자체가 없는 시야가 오히려 걸러낼 수도 있다는 얘기는 있었는데."
"있었는데?"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어. 지금까지는."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숲 저편에서 나무가 통째로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콰아앙!
땅이 흔들리는 게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짐승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훨씬 크고 무거운 것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뒤로 물러나."
안이현이 검을 고쳐 잡았다. 손등에 힘줄이 섰다.
한서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여유롭던 그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나무들 사이로 검은 형체가 보였다.
짐승이라기엔 너무 컸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뒤틀린 형태였다.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팔이 있었지만, 관절의 방향이 맞지 않았다. 등급표에서 본 어떤 그림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저게 3구역 마수라고요?"
"몰라. 나도 처음 봐."
안명희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붉은 빛을 뭉치려던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형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이 돌아가는 방향이 사람과 반대였다. 눈이라 부를 만한 부위가 우리를 향했다. 눈동자는 없었다. 그냥 어두운 구멍 두 개였다.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속이 뒤틀린다.
이건 도망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리가 저절로 뒷걸음질을 치려 했다.
"일단 후퇴 신호 보내."
한서준이 낮게 지시했다. 목소리에 떨림은 없었지만, 말이 빨라졌다.
안이현이 통신구를 꺼내려는 순간, 검은 형체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눈앞에서, 아무런 잔상도 없이.
그리고 다음 순간, 안이현의 등 뒤에 나타났다. 마치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뒤!"
내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형체의 손이 안이현을 향해 뻗었다. 손끝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착시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빨랐다.
서걱.
짧은 소리와 함께 안이현이 옆으로 튕겨 날아갔다. 몸이 접히듯 구부러진 채, 근처 나무뿌리 위로 떨어졌다.
"이현아!"
안명희가 비명을 질렀다. 손에 모으던 붉은 빛이 흩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손에 쥔 단검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등급 없는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리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고, 목소리는 안이현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나오지 않았다.
숲 전체가 그 존재를 중심으로 뒤틀리는 듯했다. 나무들이 미세하게 기울어져 보였다. 공기의 밀도가 그쪽으로만 쏠리는 것 같았다.
이게 초급 지역이라고 했었는데.
누군가 잘못 알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곳은 초급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한서준이 안이현을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형체가 다시 그 자리에서 흐릿해졌다. 사라지려는 조짐이었다.
이번엔 누구를 향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