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대신전 병사들의 창끝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방금까지 검은 도포의 남자와 목숨 걸고 싸우던 놈들이었는데, 갑자기 목표가 나로 바뀐 모양이었다.
창끝이 이렇게 많이 몰려 있는 걸 보니 오늘 운세가 최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침에 점이라도 봤어야 했나.
"저, 저기요, 잠깐만요. 저는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사 하나가 창을 들이밀며 뭐라고 외쳤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뜻은 확실했다. 죽어라, 대충 그런 의미였다.
"이질적인 기운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옆에 붙어 있던 서다은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이 여자는 항상 뭐든 알고 있는 척했으니까, 이번에도 알겠거니 했다.
기대가 무색하게, 그녀도 정확한 답은 못 줬다.
"이 위면 사람이 아닌 존재의 기운을 그렇게 부르나 봐요. 강도현 씨가 아까 그 파동을 흡수한 게 문제가 된 것 같아요."
"흡수요? 저 그냥 맞은 건데요?"
가슴팍에 아직도 얼얼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분명히 맞았다. 얻어맞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맞은 게 아니라 흡수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살아있잖아요."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저 검은 기운에 정통으로 맞고도 살아있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 아닌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더 무서워졌다.
"살아있는 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하면 안 돼요?"
"그럴 리가요. 여기 있는 존재들 눈엔 그게 다 티가 나요."
"그럼 저 완전 벌거벗고 서 있는 거네요. 이질적인 기운이라고 팻말 붙이고."
"···비슷해요."
"자, 잠깐만요, 저 이거 견습 임무라고 했잖아요."
목소리가 떨렸다. 견습 임무라는 말 뒤에 숨겨진 함정이 이제야 눈에 보였다. 간단하다고 했다. 원귀 몇 마리 수거하면 끝난다고 했다. 그 말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저도 이런 상황일 줄은 몰랐어요!"
서다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지금까지 항상 여유 있던 그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이 스쳤다. 그 표정을 보고 나니 오히려 화가 났다. 이 여자도 모르는 걸 나한테 시켰다는 뜻이니까.
"위쪽에서 받은 정보에는 이 위면이 단순 원귀 수거지라고 되어 있었어요. 이런 전쟁이 벌어질 거란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그럼 누가 정보를 잘못 넘긴 거예요, 아니면 일부러 숨긴 거예요?"
"···지금 그거 따질 때가 아니에요."
말을 자르는 그녀의 눈빛에 나는 순간 배신감이 밀려왔다. 정보를 온전히 안 줬다는 건 이미 인정한 셈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간단한 임무'라며 나를 여기 밀어넣은 건 다름 아닌 그녀였다.
"나중에 계약서 다시 쓸 거예요. 위험수당 조항 넣어서."
"지금 그게 중요해요?!"
"죽으면 아무것도 안 중요하니까 지금 말해두는 거예요!"
말은 그렇게 뱉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벌벌 떨고 있었다. 계약서니 위험수당이니 하는 말들이 이 순간 얼마나 하찮은지는 나도 알았다. 그냥 입을 놀리지 않으면 다리가 풀릴 것 같아서 아무 말이나 뱉은 것뿐이었다.
대신전 병사 하나가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는데,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흡수한 기운의 후유증인지 온몸이 저릿했다. 발끝부터 시작된 마비가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강도현 씨!"
서다은이 손을 뻗었지만 거리가 멀었다. 손끝이 허공을 긁는 게 보였다. 저 손이 나한테 닿기 전에 창끝이 먼저 닿겠구나, 그런 계산이 머릿속을 스쳤다.
창끝이 눈앞까지 다가온 순간, 뭔가 뜨거운 게 다시 배 속에서 폭발했다.
손끝에서 저번보다 훨씬 큰 기운이 응축되는 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손을 뻗자 압축된 공기 덩어리가 튀어 나가며 창을 든 병사를 그대로 튕겨냈다. 쩌엉, 하는 굉음이 울렸다.
병사의 몸이 붕 떠올랐다가 저 멀리 바닥에 나뒹굴었다. 갑옷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방금 무슨 짓을 한 건지도 모른 채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시렸다. 뼛속까지 얼어붙은 것 같은 냉기가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주위가 잠시 조용해졌다.
"···방금 뭐였지."
검은 도포의 남자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서 경계와 흥미가 동시에 읽혔다. 방금까지 죽일 듯이 노려보던 눈이었는데, 지금은 뭔가 신기한 물건을 발견한 것 같은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 그 기운은 어디서 얻었느냐."
"그건 제가 더 궁금한데요."
솔직한 대답이었다. 나도 내 몸에서 뭐가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설명서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대답할 여유도 없이 대신전 병사들의 함성이 다시 터졌다. 이번엔 아까보다 두 배는 많은 인원이 몰려들고 있었다. 창을 든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며 다가오는 모습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사슬에 묶인 흰 옷의 여인, 백설화라는 그 이름을 남자가 소리쳐 부르는 걸 아까 들었는데, 그녀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눈만 살아있는 것처럼 반짝였다.
"현성님, 저 사람 도우셔야···."
"닥쳐, 나서면 위험해!"
검은 도포의 남자, 유현성이라 불리는 그가 검을 다시 고쳐 잡으며 소리쳤다. 그의 시선이 나와 병사들 사이를 오갔다. 계산이 빠른 눈빛이었다. 나를 도울지, 그냥 내버려 둘지 저울질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저 사람도 나름 손익을 따지고 있구나 싶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서다은이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방금 전까지 여유롭던 손끝이 지금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강도현 씨, 저기 보이는 신전 쪽 문양 보여요?"
고개를 들자 신전 꼭대기에 붉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정확한 모양은 안 보였지만, 뭔가 눈이 그려진 문양 같았다. 그 눈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게 왜요?"
"저건 대신전의 감시 결계예요. 지금 저 문양이 발광하고 있어요. 이미 우리를 인지했다는 뜻이에요."
"인지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서다은은 대답 대신 이를 악물었다.
"말해주세요, 인지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저 지금 알아야 될 것 같은데요!"
"제가 지금 규정 어기고 개입하면 저도 처벌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개입 안 하면 강도현 씨가 죽을 것 같아요."
"그럼 개입해야죠, 뭘 고민해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간단하게 좀 살아봐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잖아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서다은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그녀가 소리치는 순간, 신전의 붉은 문양에서 빛줄기가 뻗어 나와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 빛이 지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병사들도, 유현성도, 백설화도 모두 그 빛에 반응해 몸을 움츠렸다.
세상이 잠깐 대낮처럼 밝아졌다. 눈이 시릴 정도의 광량이었다.
"뭐, 뭐예요 저거!"
서다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방금까지 나를 다그치던 여유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전의 심판 결계예요. 저 안에 있는 모든 이질적 존재를 봉인하거나 소멸시키는···."
말을 끝맺지 못한 그녀가 내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에 박힐 정도였다.
"봉인이나 소멸이면 둘 다 저한테는 안 좋은 거네요."
"···네."
짧은 대답이 오히려 더 무섭게 다가왔다. 이 사람도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줄기가 정확히 나를 향해 내려꽂히기 시작했다. 도망칠 곳도, 피할 방법도 없었다. 다리에 힘을 줘도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흡수한 기운이 오히려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유현성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피해, 이 어리석은 놈아!"
피하라는 말이 이렇게 쉬운 건지, 아니면 저 사람이 내 사정을 모르는 건지 판단이 안 섰다.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순간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다리는 이미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고, 빛은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숨을 들이켜는 것조차 잊었다. 눈앞이 온통 하얗게 물들어가는 그 순간, 이대로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