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계 파견 저승 공무원

3화

임용식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서류 몇 장에 사인을 하고 나니 정식으로 저승 공무원이 되었다. 서류라는 게 참 재밌었다. 이름, 생년월일, 사망 여부(공란), 소속 부서, 담당 지도관까지. 사망 여부에 공란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나는 한참을 들여다봤다. 나 죽은 거 맞나요, 물었더니 서다은은 대답도 안 하고 다음 장을 넘겼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명찰도 받았다. '견습 사신 강도현'. 명찰 재질이 플라스틱인지 뼈인지 모르겠는 게 좀 불길했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차갑고 매끈했는데, 이상하게 살짝 온기가 도는 느낌도 들었다.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애매한 온도. 딱 지금 내 처지랑 비슷했다. "이거 세탁하다 잃어버리면 어떡해요?" "안 잃어버려요. 강도현 씨 몸에 있는 한 자동으로 따라와요." "문신이에요, 뭐예요?" "비슷한 거죠." 무섭게도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죽어서 명찰 문신까지 새기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부터 저한테 배우시면 돼요." 서다은이 팔짱을 끼고 서서 말했다. 말투가 아까보다 훨씬 편해져 있었다. 상관이 되니 존댓말도 슬쩍 벗겨진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존댓말 써주면서 눈치 보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갑을 관계가 뒤집혔다. "뭘 배우는데요?" "기본적인 사신 업무. 원귀 수거, 서류 작성, 위면 이동 규칙 같은 거요." "서류 작성도 해요? 여기도 결국 관공서네." "저승도 조직인데요. 서류 없으면 안 돌아가요." "어디든 사람 피곤하게 하는 건 똑같네요." "사람 아니에요, 우리." 정정당하는 게 어색해서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위면 이동은 위험한 거 아니에요?" "위험한 위면도 있고 아닌 위면도 있어요. 강도현 씨는 견습이니까 당연히 안전한 곳부터 배정될 거예요." 그 말이 나중에 얼마나 큰 거짓말이었는지는 이때는 몰랐다. 첫 훈련은 연습실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방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서다은이 손을 휘젓자 바람이 응축되며 작은 구체가 만들어졌다. 방 자체도 이상했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없이 그냥 사방이 회색빛으로 흐릿했다. 여기가 방인지 그냥 공간의 개념인지 헷갈렸다. "이게 공기포예요." "공기로 만든 대포요?" "쉽게 설명하면 그래요. 사신들은 원귀나 잡귀를 상대할 때 이런 식으로 기운을 압축해서 쏴요." "총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총 쓰면 편할 텐데." "원귀한테 총이 왜 통해요." "아, 그렇구나." 당연한 걸 물은 기분이라 민망했다. "저도 할 수 있어요?" "보통은 몇 년은 걸려요. 그런데 강도현 씨는 좀 특이해서요." "특이하다는 게 뭔데요." 서다은은 대답 대신 내 손을 잡아 앞으로 뻗게 했다. 손이 차가웠다. 사람 손이라기보다는 그냥 온도가 없는 물체를 만지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또 은근히 신경 쓰였다. 손바닥에서 뭔가 뜨거운 감각이 올라왔다. 뭐지 이거. "기운을 느껴봐요.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서 손끝으로 밀어내는 거예요." "단전이 어디예요, 배꼽 밑?" "대충 그쯤이요." 대충이라니. 이런 중요한 걸 대충이라는 말로 설명하다니, 저승 교육 방식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배꼽 밑을 아무리 의식해봐도 그냥 뱃살만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시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다은이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게 부담스러워서 더 안 됐다. "천천히 해요. 조급해하면 더 안 나와요." "저 지금 안 조급한데요." "눈에 그렇게 써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조급했던 건 맞다. 그런데 세 번째 시도쯤에서, 배 안쪽에서 뭔가 뜨거운 게 꿈틀거렸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뭔가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그게 낯설지가 않았다.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걸 이제서야 발견한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감각이었다. 손끝에서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바람 덩어리가 튀어 나갔다. 그게 벽에 부딪혀 조그맣게 퍽 소리를 냈다. "···와." 서다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뭔가 이상한 걸 본 사람의 표정이었다. "왜요, 뭐 잘못됐어요?" "아니에요, 그냥. 첫 시도에 이 정도 나오는 건 흔치 않아서요." "제가 좀 재능이 있나 보죠." "···그럴 수도 있고요." 말끝이 흐려지는 게 신경 쓰였지만, 나는 그냥 넘겼다. 칭찬받은 기분에 살짝 들떠 있었으니까. 죽어서까지 재능 발견당하는 인생이라니, 살아있을 때는 뭐 하나 특출난 것 없었는데, 이런 데서 재능이 터진다는 게 좀 웃기기도 했다. "이 정도면 저 빨리 승진하는 거 아니에요?" "승진 체계 같은 거 없어요, 여기." "그럼 뭐가 있는데요." "그냥 계속 견습이거나, 아니면 계급이 오르거나. 근데 그건 나중 얘기고." 애매한 대답이 이어졌지만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훈련은 그 뒤로 며칠, 아니 저승 기준으로 몇 번의 '주기'가 흘렀다. 정확한 날짜 개념이 없어서 나는 그냥 세끼 밥 먹듯 훈련을 반복했다. 여기선 밥도 안 먹는데 왜 세끼라는 표현이 입에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공기포는 조금씩 커졌다. 처음엔 손가락 마디만 하던 게 나중엔 주먹만 해졌고, 벽에 부딪혔을 때 나는 소리도 퍽에서 팍, 그리고 콰앙까지 커졌다. 서다은은 그걸 볼 때마다 표정이 조금씩 더 복잡해졌다. 칭찬을 하면서도 뭔가를 걱정하는 얼굴. 그 미묘한 낙차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물어봐도 딱히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저 이상해요? 왜 그렇게 봐요." "아니에요, 잘하고 있어서 그래요." "근데 표정은 왜 그래요." "제 표정이 원래 이래요."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캐물어도 대답 안 해줄 게 뻔했으니까. 서류 작성 교육도 병행됐다. 원귀 수거 확인서, 위면 진입 신고서, 소멸 처리 보고서. 종류가 왜 이렇게 많은지, 죽어서도 문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다 손으로 써요?" "네." "펜은 어디서 나와요? 저승엔 문구점 없죠." "의지로 만들어 쓰는 거예요." "의지로 만든다고요? 아까 배운 공기포처럼요?" "비슷한 원리예요." 간단한 원리라는 게 말도 안 됐다. 손끝에서 뭔가를 뽑아내는 게 이제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실전 투입이에요." 어느 날 서다은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훈련했다고 벌써 실전이라니, 저승 인력 운용도 참 급하다 싶었지만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어디로 가는데요?" "위면 하나 배정됐어요. 판타지 계열인데, 원귀 몇 마리 정리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예요." "판타지 계열이요? 그럼 검이랑 마법 나오는 그런 세계예요?" "대충 그런 느낌이에요." "오, 재밌겠는데요." "재밌는 거 아니에요." "왜요, 판타지인데." "판타지라고 다 재밌는 거 아니에요." 말투에 뭔가 뾰족한 게 섞여 있었는데, 나는 그걸 그냥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원귀 몇 마리요? 그게 다예요?" "네, 그게 다예요."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는데, 그때는 그냥 좋게만 생각했다. 견습이니까 쉬운 것부터 시키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이번 임무를 가볍게 클리어하고 돌아와 서다은한테 또 재능 소리 듣는 그림까지 그려두고 있었다. 서다은이 손을 뻗어 공중에 원을 그렸다. 원 안쪽으로 빛이 일그러지며 문이 열렸다. 문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 그냥 공기 자체가 접히면서 구멍이 생기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들어가면 돼요. 저도 같이 갈 거예요." "당연하죠, 견습을 어떻게 혼자 보내요." "그냥 확인이에요." "확인이요? 뭘 확인해요?" "···그냥요." 그녀의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이 섞여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아채지 못했다. 그냥 새로운 세계로 간다는 설레임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판타지 세계 구경이라니, 죽어서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될 줄이야. 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공기가 확 바뀌었다. 서늘하고 축축한, 그리고 어딘가 멀리서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는 공기였다. 흙냄새와 함께 뭔가 탄 냄새도 섞여 있었다. "어라." 간단한 임무라기엔 뭔가 소리가 너무 크지 않나. 옆을 돌아보니 서다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까 연습실에서 봤던 그 복잡한 표정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한 얼굴이었다. "저기, 서다은 씨. 원귀 몇 마리라고 하셨죠." "그랬죠." "근데 저 소리는 뭔데요." 서다은이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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