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화산으로 가는 길은 사흘이 걸렸다.
첫날은 관도를 벗어나 산자락 아래 마을에서 묵었다. 둘째 날은 계곡을 타고 올랐다. 셋째 날 아침, 안내인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협곡을 지나면 반나절이면 화산 초입입니다."
원정대는 총 열두 명이었다. 검사 넷, 법사 셋, 시녀 둘, 안내인 하나, 그리고 나와 소한.
짐을 진 채 대열 후미를 걸으며 나는 하나하나를 눈에 새겼다. 검사 우두머리 목현은 어깨가 벌어진 체격에 걸음이 무거웠다. 검을 다루는 손목이 두꺼웠다. 실전을 겪은 자의 걸음이었다. 나머지 검사 셋은 그보다 젊었고, 서로 눈을 맞추며 대열을 유지했다. 법사 셋은 각자 지팡이 대신 짧은 목간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것이 진언을 완성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나는 이미 관찰해뒀다. 시녀 둘은 현서율의 곁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산길에 접어들면서 공기가 달라졌다. 습하고 진한 초목의 냄새. 그리고 그 아래 깔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물감.
나는 이런 기운을 안다. 방계 시절에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요기(妖氣).
콧속이 알아서 먼저 반응했다. 숨을 얕게 쉬었다. 짐꾼답게, 겁먹은 척.
"다들 긴장 풀지 마라."
목현이 낮게 외쳤다. 현서율은 그 뒤에서 태연한 척했지만, 손이 검자루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보였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 손버릇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궁 안에서도 긴장하면 옷고름을 만지던 손이었다. 지금은 검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
나는 짐을 진 채 대열 후미에서 지형을 살폈다. 좁은 협곡. 양쪽 절벽. 위로는 나무가 빽빽해 하늘이 실오라기처럼 보였다. 매복이나 대형 몬스터가 나타나기 딱 좋은 지형이었다.
—이런 곳을 지나면서 정찰을 세우지 않는다.
원정대의 허점이 눈에 들어왔다. 안내인은 길만 알 뿐 위험을 읽는 자가 아니었다. 검사들은 앞뒤를 지킬 뿐 협곡 위쪽의 그림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였다면 저 절벽 위에 하나쯤 세워뒀을 것이다.
그때였다.
땅이 흔들렸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진동. 처음엔 지진인가 싶었지만 곧 방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지점에서 퍼져 나오는 흔들림.
비늘로 덮인 거대한 몸체가 절벽 사이에서 솟아올랐다. 뱀이었다. 아니, 뱀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몸통 둘레가 사람 셋을 합친 것보다 컸고, 그 눈은 사람처럼 지능이 담겨 있었다. 눈동자가 세로로 갈라진 채 원정대를 하나씩 훑어보는 것이, 사냥감을 고르는 눈빛이었다.
시녀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원정대 전체가 얼어붙었다.
"진형!"
목현이 소리쳤다. 검사들이 재빨리 현서율을 감쌌다. 법사들이 진언을 외기 시작했다. 목간을 쥔 손이 빠르게 문양을 그렸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언어라기보다 리듬에 가까웠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짐꾼답게, 약자답게. 하지만 시선은 뱀 요괴에게서 떼지 않았다.
뱀이 아가리를 벌렸다.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회록색 안개가 순식간에 퍼졌다. 검사 하나가 재빨리 피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시녀 하나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쓰러진 시녀의 피부에 검붉은 자국이 번지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저를 지켜라!"
현서율이 외쳤다.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시에 명령을 내리는 자의 무게도 담겨 있었다. 저 짧은 한마디 안에서도 그녀가 자란 자리가 드러났다. 두려운데도 명령이 먼저 나오는 사람.
법사 하나가 화염 진언을 완성했다. 붉은 불덩이가 뱀의 몸통을 강타했다. 뱀이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었다. 비늘 몇 조각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협곡을 채웠다.
그 순간 나는 소한을 봤다.
그는 진언을 외지 않았다. 대신 슬쩍 뒤로 물러나며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부적처럼 보이는 종이였다. 그의 눈은 여전히 뱀이 아니라 현서율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칼을 뽑는 놈은 읽힌다. 하지만 칼을 뽑지 않는 놈이 더 위험하다.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소한은 이 전투를 이용해 무언가를 하려 한다.
뱀이 다시 공격했다. 이번엔 목현을 향해서였다. 목현이 검을 휘둘렀지만 밀렸다. 거대한 몸체가 그의 어깨를 후려쳤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목현!"
현서율이 소리쳤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을 봤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장난기라곤 하나도 없는, 순수한 걱정이 담긴 얼굴. 저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생각하다 곧 접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검사들이 흐트러졌다. 법사들의 진언도 엉키기 시작했다. 목간을 쥔 손이 떨리자 문양이 흐트러졌고, 진언 하나가 허공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원정대는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짐꾼의 자리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봤다. 힘을 쓰면 이 위기를 단숨에 정리할 수 있었다. 뱀의 목을 부러뜨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숨 두 번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정체가 드러난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위장이 모두 무너진다.
계산해야 한다. 축을 나눠서.
첫째 축, 지금 개입해 위기를 넘긴다. 정체가 드러나고 이후의 모든 관계가 재편된다. 원정대는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고, 그 시선은 곧 의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둘째 축, 개입하지 않고 지켜본다. 원정대가 스스로 위기를 넘기거나, 넘기지 못한다. 넘기지 못하면 사람이 죽는다.
두 번째를 택하기엔 사람이 죽을 수 있었다. 유하린을 떠나보낸 후회가 다시 떠올랐다. 지킬 수 있는데 지키지 않는 것과, 지킬 수 없어서 못 지키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나는 이미 한 번 몸으로 겪었다.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지금.
그때 소한이 움직였다.
그는 부적을 뱀을 향해 던지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현서율이 서 있는 방향의 지반에 붙였다. 손동작은 빠르고 조용했다. 전투의 소음 속에 숨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무언가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남자는 뱀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혼란을 이용해 다른 것을 노리고 있었다. 뱀은 무대일 뿐, 진짜 칼은 저 부적 안에 있었다.
소한의 손이 부적을 향해 뻗었다. 발화의 조짐이었다.
나는 몸을 낮춘 채 짐 사이에서 일어섰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다음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뱀의 독보다 더 가까운 위험이 현서율의 발밑에 붙어 있었다.
뱀의 울음소리가 협곡을 울렸다. 그리고 그 아래, 부적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