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노파의 거처는 묘지 외곽의 작은 초옥이었다. 흙벽에 짚으로 엮은 지붕. 내가 살던 시절의 하급 무사 숙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였다. 문지방은 낮았고, 처마 끝에는 마른 풀 다발이 몇 개 매달려 있었다. 그 익숙함이 오히려 낯섦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같은 모양의 그릇, 같은 결의 나무 기둥. 그런데도 냄새가 달랐다. 흙 내음 속에 섞인 어떤 풀 향, 내가 알던 세계에는 없던 냄새였다.
노파는 나를 방에 들이고 무언가를 내밀었다. 죽이었다. 나무 그릇에 담긴 죽에서 김이 올라왔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잠시 머뭇거렸다. 독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노파의 눈에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손끝으로 그릇의 온기를 가늠했다. 뜨겁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게 있었다. 독을 쓰려는 자는 온기를 이렇게 정직하게 내놓지 않는다.
먹었다. 뜨겁고 담백한 맛이었다. 몸이 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죽의 온기가 배 속까지 퍼졌다. 죽었다 살아난 몸이 이렇게 정직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이토록 단순한 방식으로 확인될 줄은 몰랐다.
노파는 내가 그릇을 비우는 걸 끝까지 지켜봤다. 말은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날부터 나는 노파의 거처에 머물렀다. 노파의 이름을 알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강묘선. 손짓과 발짓, 흙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알아낸 이름이었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나"라는 뜻을 전하려 했고, 노파는 그 손짓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소리로 알려줬다. 강. 묘. 선. 세 음절을 몇 번이나 되뇌게 했는지 셀 수 없었다.
강묘선은 매일 나에게 몇 가지 단어를 가르쳤다. 물, 불, 밥, 사람. 그녀는 사물을 가리키고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가르쳤고, 나는 그것들을 흙벽에 새겨두고 외웠다. 손톱으로 흙을 긁어 글자 대신 기호를 만들고, 그 옆에 소리를 표시했다. 방계 시절 익힌 습관 하나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문파의 서고에서 눈치를 보며 훔쳐 읽던 습관, 정보를 최대한 빠르게 흡수하는 방식. 그때는 살아남기 위한 잡기였다. 지금은 살아남기 위한 전부였다.
밤이 되면 강묘선은 화로 옆에 앉아 실을 짰다. 나는 그 옆에서 낮에 배운 단어들을 입속으로 되뇌었다. 발음이 어긋날 때마다 강묘선은 실 짜던 손을 멈추고 내 입 모양을 고쳐줬다. 그 손짓에는 다그침이 없었다. 그저 반복이었다.
열흘쯤 지났을 무렵, 나는 간단한 문장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너, 어디서 왔나."
강묘선이 처음으로 물은 질문이었다. 화로의 불빛이 그녀의 주름진 얼굴에 그림자를 그렸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나조차 몰랐다. 다만 짐작은 있었다. 죽음의 순간,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어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모른다. 죽었다가, 여기서 깨어났다."
서툰 발음으로 겨우 대답했다. 강묘선의 표정이 굳었다. 손에 쥐고 있던 실이 멈췄다. 그러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예상했던 대답을 확인받은 사람처럼.
"신마릉원. 이 묘지의 이름이다. 신과 마가 모두 사라진 자리에, 그들의 무덤을 지키는 곳."
신과 마가 사라졌다는 말.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등줄기에 서늘함이 스치는 것은 느꼈다. 신과 마. 이 세계에서 그 두 글자가 갖는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곳은 어느 나라인가."
내 질문에 강묘선은 잠시 침묵했다. 화로의 불이 타는 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현국의 땅이다. 하지만 이 묘지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곳을 지키는 자는 나뿐이다."
현국.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해뒀다. 그리고 강묘선이라는 이름의 노파가 이 거대한 묘지를 홀로 지킨다는 사실도. 홀로.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이만한 땅을 지키는 데 어째서 사람이 하나뿐인가.
나는 강묘선을 관찰했다. 그녀의 손등에는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칼에 베인 흔적처럼 보였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언가를 오래 지켜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안정감이었다. 방 안의 물건들도 하나같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래 정돈된 살림이라는 뜻이었다.
이 사람은 신뢰할 만하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판단과 별개로, 나는 내 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죽었다 살아난 몸이지만, 내 안의 내공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짙어져 있었다. 밤마다 홀로 기감을 가라앉히고 내부를 살폈다. 단전 안에서 맥동하는 기운은 낯설 정도로 두터웠다. 이유는 몰랐다. 다만 확실한 건, 이 힘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는 신과 마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무엇인가. 아직 나는 그것을 몰랐다. 모르는 판에서는 패를 숨기는 것이 상책이다. 방계 시절부터 뼈에 새긴 원칙이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나는 현국의 말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장을 만드는 데 아직 서툴렀지만, 의사는 전할 수 있었다. 강묘선은 나에게 옷을 지어주고, 신마릉원 외곽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무명천으로 지은 옷이었다. 소매가 조금 길었지만, 그녀가 밤을 새워 지은 것임을 손끝의 바늘 자국으로 알 수 있었다.
"조심해라. 이 세상은 네가 알던 세상이 아닐 거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 말을 그저 노파의 걱정으로 넘기지 않았다. 무언가를 알고 하는 말이었다. 눈빛에 걱정 이상의 무게가 있었다. 경험에서 나온 경고였다.
신마릉원 바깥으로 나서던 날, 나는 처음으로 이 세계의 하늘을 제대로 봤다. 낯선 별자리였다. 익숙한 국자 모양도, 삼태성의 배열도 없었다. 낯선 새들이 날았다. 날개 색이 진한 자줏빛을 띤 새들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살아야 한다는 목표만은 분명했다.
발밑의 흙은 부드러웠고, 바람은 서늘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풀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 낯선 하늘 아래, 나의 다음 악연이 물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