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별채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청하촌의 초가집과는 비교할 수 없이 화려한 방이었으나, 그 화려함 속에는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도현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상 위로 몸을 던지며 긴 여정의 피로를 풀었으나, 도윤은 창가에 서서 바깥의 풍경을 오래도록 살피고 있었다.
"도윤아, 뭘 그렇게 봐?" 도현이 물었다.
"별채 주변의 경비를 보고 있어." 도윤이 담담히 답했다. "이곳도 감시받고 있는 것 같아."
도현은 그 말에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왔다. "진짜? 어디?"
"저기 담벼락 뒤, 그리고 저 정원 나무 뒤에도." 도윤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둠이 깔린 정원 곳곳에는,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시종처럼 보이나 자세를 낮추고 서 있는 모습이 무인의 것임을 짐작케 하는 인영들이 몇몇 있었다.
도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 우리를 감시하는 거야? 우린 그냥 각성식에 참여하러 온 것뿐인데."
"아마도,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이 세가에는 불편한 진실인 거겠지." 도윤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는 창문을 살짝 열어 밤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태풍은 노골적으로 우리를 멸시하고 위협했다. 태뢰는 표면상 친절했으나, 그 속을 알 수 없다. 두 삼촌 모두 우리의 존재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윤과 도현이 동시에 긴장한 채 문을 바라보자, 문이 열리며 한 시녀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나이가 지긋한 그녀는 두 소년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두 공자님, 저녁 진지를 준비했습니다. 드시겠습니까?"
도윤은 그 시녀의 태도를 유심히 살폈다. 지나치게 공손했으며, 그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동정과 조심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이 시녀는 우리에게 호의적이거나, 적어도 적의는 없어 보인다.' 그는 그렇게 판단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시녀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저는 순덕이라 합니다, 공자님."
"순덕 할머니, 이 세가에 오래 계셨나요?"
"벌써 삼십 년이 넘었지요." 순덕이 답했다.
도윤의 눈이 반짝였다. '삼십 년이라면, 15년 전의 사건도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화제를 이어갔다. "그럼, 저희 아버지 강태산도 잘 아시겠네요."
순덕의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태산 공자님을 모르는 사람이 이 세가에 있을 리가요. 한때는 세가의 자랑이셨지요."
"지금은 왜 그렇게 되신 걸까요?" 도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순덕은 그 질문에 눈에 두려움을 스쳐 보이며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그, 그건 저 같은 아랫사람이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공자님. 그저... 15년 전 그 일이 있고 나서, 세가 전체에 함구령이 내려졌지요."
"함구령이요? 누가 그런 명을 내리신 건가요?"
순덕은 더 이상 답하기를 꺼리는 듯,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 그런 것보다 진지를 준비해 놓았으니 어서 드시지요, 공자님들." 그녀는 서둘러 방을 나갔고, 그 뒷모습에서 감출 수 없는 불안이 느껴졌다.
도현은 그 대화를 지켜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도윤아, 저 할머니가 뭔가 아는 것 같은데, 왜 말을 안 해줄까?"
"함구령이 내려졌으니까." 도윤이 답했다. "그리고 그 함구령을 내린 사람은, 아마 할아버지나 종조부 중 한 분일 것이다."
두 형제가 저녁을 마친 후, 도윤은 방을 나와 정원을 잠시 걷기로 했다. 도현은 피로에 눌려 먼저 잠들었고, 도윤은 그 조용한 밤을 이용해 세가의 구조와 경비 상황을 좀 더 파악하고자 했다. 여섯 살 아이의 산책이라 여겨 큰 경계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정원을 거닐던 도윤은, 어느 회랑 아래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두 인영을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귀를 기울였다.
"운창 태공께서 이번 각성식을 눈여겨보고 계신다더군." 한 목소리가 말했다. 도윤은 그 목소리가 낯설었으나, 억양에서 세가 내부의 고위 인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산의 아들들 때문이겠지. 만약 그 막내가 뛰어난 영력을 각성한다면, 가주님께서 마음을 바꾸실 수도 있으니까." 다른 목소리가 답했다.
"가주님이 태산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계신다는 게 사실인가?"
"글쎄, 표면적으로는 아니지만... 15년 전 그 일에 대해, 가주님께서 정말 알고 계신 것을 다 말씀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도윤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숨기고 있다는 것인가.' 그는 더 자세히 듣고자 몸을 낮췄으나, 그 순간 발밑의 자갈이 작은 소리를 냈다.
두 목소리가 순간 멈췄다. "누구냐!" 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외쳤다.
도윤은 재빨리 판단을 내렸다. 도망치면 오히려 의심을 살 것이라 여긴 그는, 오히려 태연하게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 "밤이 깊어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왔습니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두 인영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 명은 중년의 관복을 입은 사내였고, 다른 한 명은 세가의 무사복을 입은 자였다. 관복을 입은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너는... 청하촌에서 온 아이로구나. 어찌 이 늦은 시간에 이곳까지 나왔느냐?"
"세가가 너무 크고 아름다워, 잠시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도윤이 순진한 아이의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 태연함에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흠, 어린것이 담이 크구나." 관복을 입은 사내가 낮게 중얼거리며 도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경계심과 함께,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계산이 스쳤다. "어서 별채로 돌아가거라.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면 위험하다."
"명심하겠습니다." 도윤이 공손히 답하며 돌아섰다. 그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등 뒤로 느껴지는 두 사람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방금 그 대화, 분명 무언가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더 캐물었다면 위험해졌을 것이다.'
별채로 돌아온 도윤은 침상에 누웠으나, 쉬이 잠들지 못했다. 오늘 하루 동안 얻은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었다. '태풍의 노골적인 적의, 태뢰의 알 수 없는 속내, 그리고 할아버지와 종조부가 얽힌 15년 전의 비밀.' 그는 그 모든 조각들이 결국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했으나, 아직 그 전체 형상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방 안을 은은하게 물들였다. 도윤은 그 달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각성식을 위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었고, 그 준비 과정에서 또 어떤 위협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세가에 발을 들인 이상, 그는 더 이상 순진한 어린아이로만 남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