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잿더미 위의 어린 검

2화

마차가 청하촌을 벗어나 관도(官道)에 오른 지 이틀이 지났다. 산세가 험한 청하촌 인근을 지나면서부터는 길이 제법 넓어졌고, 오가는 행인의 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흙길 위로 짐수레와 말발굽 소리가 끊임없이 뒤섞였고, 그 소음 속에서 도윤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유심히 살피며, 이 여정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마부의 무뚝뚝한 태도 뒤에 숨은 미묘한 경계, 길가 객잔에서 흘러나오는 강씨세가에 관한 소문들, 그 모든 것이 조각조각 그의 머릿속에 쌓여가고 있었다. 어린 몸에 갇힌 채 다시 태어난 그였으나, 정신은 이미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을 지나온 자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알고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정보 하나가, 훗날 목숨을 가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형, 저기 좀 봐." 도윤이 손가락으로 관도 옆 객잔을 가리켰다. 낡은 현판에는 '경도객잔'이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앞마당에는 제법 화려한 복장을 한 무인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비단으로 짠 무복 위로 은실로 수놓인 문양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고, 허리춤의 검집마다 정교한 세공이 새겨져 있었다. 도현이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저 사람들 옷차림 좀 봐, 청하촌 사람들이랑은 완전히 다르네." 그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동경과 약간의 위축이 섞여 있었다. 열한 살 소년의 눈에는 그 화려함이 곧 힘의 증표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차가 잠시 객잔 앞에 멈춰 말에 물을 먹이는 사이, 도윤은 마차에서 슬쩍 내려 마당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기에 누구도 그를 경계하지 않았고, 그는 그 이점을 놓치지 않았다. 걸음걸이는 어리숙하게, 시선은 흐리멍텅하게, 그러나 귀만은 날카롭게 세운 채로 그는 무인들의 대화가 있는 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나무 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 걸터앉아 마치 그늘을 즐기는 아이처럼 보이도록 몸을 낮췄다. 무인들의 대화가 바람을 타고 그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이번 각성식에는 청하촌의 그 폐인 자식들도 온다더군." 한 무인이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술기운이 오른 얼굴에는 조롱기가 가득했다. "강태산의 아들들 말인가? 흥, 그 집안 핏줄이 무슨 영력을 각성한들 별 볼 일 있겠나." 다른 무인이 코웃음을 쳤다. 그가 술잔을 탁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삼공자가 유독 그쪽에 관심이 많다더군. 5년 전에도 직접 청하촌까지 찾아가 강태산을 손봤다는 얘기가 있지 않나." "태풍 공자 말인가? 그 성격에 뭘 못 하겠어. 형제란 것도 우습지, 자기 형이 폐인이 됐다고 그렇게 짓밟다니." "쉿, 목소리 낮춰. 그 얘기 함부로 하다가 걸리면 목이 몇 개라도 부족할걸." 처음 입을 열었던 무인이 주변을 살피며 낮게 경고했다. 도윤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삼공자, 강태풍. 5년 전 아버지를 찾아가 손을 댔다는 자가 바로 그자인가.' 그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몸을 낮추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듯한 감각이었으나, 얼굴에는 그저 무료한 아이의 표정을 그려 넣었다.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번 계승 구도 아닌가. 가주님이 연로하시니, 이제 곧 후계를 정해야 할 텐데." "운창 태공(太公)께서 벌써부터 움직이고 계신다더군. 태풍 공자와 태뢰 공자, 둘 다 그분의 뒷배를 노리고 있다지." "태뢰 공자는 겉으로는 부드러운 사람인데, 그 속을 누가 알겠나. 태풍 공자보다 오히려 더 위험할지도 몰라." "위험하기로는 둘 다 마찬가지지.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야. 태풍 공자는 검으로 짓밟고, 태뢰 공자는 웃음으로 목을 조르는 격이랄까." 무인 하나가 낮게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어느 쪽이든, 그 사이에서 눈에 밟히는 핏줄은 살아남기 힘들지." 도윤은 그 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새겼다. '할아버지, 강운중. 그리고 그 형인 종조부 강운창. 두 갈래의 권력이 얽혀 있고, 그 아래 태풍과 태뢰라는 삼촌들이 있다. 아버지는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무언가를 겪은 것이다.' 어린 나이였으나, 도윤의 사고는 이미 어른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조각난 정보들이 서서히 하나의 형체를 이루어가는 것을, 그는 마치 흐린 안개 속에서 산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보듯 느꼈다. 마차가 다시 출발할 시간이 되어 도윤은 조용히 자리를 떠 마차에 올랐다. 걸음은 여전히 아이의 것이었으나, 그 눈빛만은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도현은 그런 동생의 심각한 표정을 눈치채고 물었다. "도윤아, 뭐 들은 거 있어?" 도윤은 잠시 형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 우리를 노리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태풍이라는 삼촌." 도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태풍 삼촌? 아버지가 예전에 말씀하신 적 있어. 무섭고 거친 사람이라고. 근데 왜 우리를 노려?" "아버지를 폐인으로 만든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도윤이 낮게 말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후계 문제도 얽혀 있는 것 같고." "후계?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도현이 미간을 좁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도 강씨세가의 핏줄이니까. 아버지가 폐인이 됐어도,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언젠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어." 도윤은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하려 애썼으나, 그 내용 자체가 열한 살 소년에게는 버거운 무게였다. 도현은 동생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그 어조에서 심상치 않은 무게를 느꼈다. "그럼 우리 조심해야겠네." 그는 허리춤의 용아검을 슬쩍 만지며 결의를 다졌다. 손바닥에 닿는 검병의 감촉이 그에게는 유일한 안심거리였다. "형, 검 다룰 줄은 알아?" 도윤이 문득 물었다.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기본 초식 몇 개 정도는." 도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그것만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윤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점점 멀어지는 경도객잔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그 지붕 아래에서 오간 대화들이, 마치 독처럼 서서히 그의 마음속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마차는 계속해서 관도를 달렸다. 바퀴가 돌부리를 넘을 때마다 마차 전체가 흔들렸고, 그 진동이 도윤의 상념을 자꾸 끊어놓았다. 그러나 끊긴 상념은 곧 다시 이어졌고, 그렇게 이틀이라는 시간이 마차 바퀴처럼 굴러갔다. 사흘째 되는 날, 마부가 잠시 마차를 세우고 인근 주막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동안, 도윤은 다시 한번 정보를 모을 기회를 잡았다. 주막의 늙은 주인은 강씨세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듯 보였고, 도윤은 순진한 아이의 얼굴로 접근했다. 국밥을 먹는 척 숟가락을 든 채로, 그는 슬며시 주인 노인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 강씨세가는 어떤 곳이에요?" 도윤이 물었다. 목소리에는 딱 아이다운 순수한 호기심만이 담겨 있었다. 늙은 주인은 아이의 순진한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강씨세가? 경도에서 손꼽히는 무가(武家)지. 가주님이신 강운중 대인께서 다스리시는데, 형제 간의 알력이 심하다는 소문이 많단다." 그는 국밥을 뒤적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랜만에 이야기 상대가 생긴 것이 반가운 듯, 목소리에는 은근한 흥이 실려 있었다. "알력이요?" "그래. 가주님의 형님이신 운창 태공께서 실권을 상당히 쥐고 계시다는데, 그 밑으로 여러 공자들이 서로 세력을 넓히려 다투고 있다는 게야. 15년 전에도 큰 사건이 있었다고 하던데,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구나." 노인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15년 전이요?" 도윤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응, 흑염교라는 사교(邪敎)와 관련된 일이었다지. 그때 세가에서 큰 인물이 다치거나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정확한 내막은 세가 내부에서도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하더구나." 노인은 잠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얘기 함부로 꺼내면 좋은 소리 못 듣는다는 말도 있고. 그러니 너도 나중에 누구한테 함부로 물어보지 말거라." "흑염교는 어떤 곳이에요?" 도윤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으나, 그것을 눈치챌 만큼 예리한 노인은 아니었다. "사교라는 게 다 그렇지. 사람 목숨 가지고 이상한 술법을 부린다더군. 경도 인근에서 한때 크게 세를 떨쳤다가, 강씨세가와의 큰 싸움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는 얘기가 있단다. 다만 완전히 뿌리가 뽑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노인은 국밥 한 술을 크게 떠 입에 넣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자, 어린 손님도 얼른 먹어야지. 식으면 맛없어." 도윤은 그 말을 듣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15년 전, 흑염교. 아버지가 부상을 입은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그의 어린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더 물으려 했으나, 늙은 주인은 이미 다른 손님에게로 관심을 옮긴 뒤였다. 저쪽 탁자에서 손님 하나가 술을 더 청하는 소리가 들렸고, 노인은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향했다. 도윤은 남은 국밥을 천천히 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흑염교. 15년 전. 아버지의 부상. 그리고 지금의 후계 다툼. 이 모든 조각들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의 그림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다만 그 그림의 전체 형상이 무엇인지는, 아직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날 밤, 마차 안에서 도윤은 잠든 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도현의 얼굴에는 근심의 그림자가 옅게 남아 있었으나, 잠든 표정만은 아직 순진한 소년의 것이었다. '아버지의 부상, 흑염교, 15년 전의 사건, 그리고 지금의 권력 다툼.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실로 이어져 있다.' 그는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 하나 없는 밤이었으나, 그의 눈빛만은 그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차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고,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처럼 도윤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손끝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천천히 문질렀다. 전생의 기억이 스며든 이 어린 몸은, 아직 무공 한 초식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정신만은 이미 수많은 계략과 음모를 헤쳐온 자의 것이었기에, 그는 초조함보다는 오히려 냉정한 계산을 앞세웠다. '경도에 도착하면, 나는 이 실의 끝을 찾아야 한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는 아직 완전히 알지 못했다. 마차는 어둠을 뚫고 계속해서 경도를 향해 나아갔고, 그 안에서 잠든 두 형제의 운명도 조금씩,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마차 안의 공기는 서늘해졌다. 도윤은 형의 몸에 얇은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자신도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강태풍이라는 이름, 강태뢰라는 이름, 그리고 흑염교라는 세 글자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채 빙빙 돌았다. 마치 거대한 그물이 서서히 그들 형제를 향해 좁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 정오, 마차는 드디어 경도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성벽과 그 위로 늘어선 깃발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도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청하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규모였다. 성벽의 높이만 해도 청하촌 전체 가옥을 서너 개 쌓아 올린 듯했고, 그 위로 늘어선 깃발들은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며 강씨세가의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성문을 지키는 무사들의 갑옷에는 강씨세가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갑옷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고, 그들의 눈빛은 지나가는 행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훑어보고 있었다. 도현은 그 위압적인 광경에 절로 몸이 굳는 것을 느꼈고, 도윤 역시 겉으로는 태연했으나 속으로는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도윤은 마차 창문에 이마를 살짝 대고 성문 안쪽을 살폈다. 그리고 그 성문 안쪽, 저 멀리에서 이미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인영 하나가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 인영은 미동도 없이 서서,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로 마차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윤의 손끝이 다시 한번 미세하게 떨렸다. 저 인영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서 있는 것인지,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그들 형제의 경도 생활은, 저 인영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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