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라도 백작령의 첫 아침은 닭 울음소리로 시작되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적어도 세 마리는 됨직한, 서로 목청을 다투듯 울어대는 소리였다. 유하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마당 한복판에서 닭들이 요란하게 활개를 치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모습에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수도의 공작가에서는 새벽 시종이 조용히 커튼을 걷어주며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나긋하게 속삭이는 것이 아침의 시작이었으니, 이런 요란한 기상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창틀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형 선고를 받은 악역영애였던 자신이, 오늘은 시골 영지의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깨는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서글픔에 오래 머무를 시간은 없었다. 배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꼬르륵 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이서아가 이미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열여섯 살의 소녀는 왕립 숙녀학당에서 배운 예법을 흉내내듯 등을 곧게 세우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얌전히 모으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노골적인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마치 방금 우리 안에 들어온 낯선 짐승을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서아가 인사를 건넸지만, 눈빛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오빠가 데려온 손님이 하필 그 유명한 악역영애일 줄은 몰랐네요.”
“서아야.” 이태오가 헛기침을 하며 여동생을 나무랐다. 그의 귀가 슬쩍 붉어졌는데, 손님 앞에서 여동생의 무례함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유하린은 오히려 담담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불리는 것도 익숙해져야겠죠.”
그 대답에 서아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것은 냉소나 오만함, 혹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억울함이었는데, 돌아온 것은 뜻밖의 솔직함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아는 뭐라 더 쏘아붙이려던 말을 삼키고, 대신 수프 그릇을 유하린 쪽으로 슬쩍 밀어주었다. 아주 미세한 동작이었지만, 유하린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침 식사는 소박했다. 갈색 빵과 삶은 감자, 그리고 짠맛이 강한 수프 한 그릇이 전부였는데, 유하린은 수도에서 매 끼니마다 나오던 열두 가지 요리─은쟁반에 담긴 거위 간 요리며 장미향이 도는 디저트까지─를 떠올리며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 멈칫함을 감추려고 서둘러 수프를 떠먹었는데, 예상보다 짠맛이 강해 눈이 절로 크게 떠졌다.
“어, 짜, 짜네요.” 그녀는 무심코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고, 이태오는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수프를 맛보았다. 한 숟갈을 삼키고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 마치 방금 소금 광산 하나를 통째로 삼킨 사람 같았다.
“아, 이런. 요리사가 요즘 소금 값을 아끼려다 반대로 너무 많이 넣은 모양입니다. 저희가 소금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 계산이 서툴러서요.”
“소금을 아끼려다 더 넣었다는 게 무슨 계산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을 터뜨리자, 서아도 결국 참지 못하고 픽 웃음을 흘렸다. 유하린은 그 웃음소리가 생각보다 맑다는 것을 깨닫고, 아까의 경계심 어린 눈빛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백작님댁 요리사는 소금과 원수라도 진 모양이네요.” 유하린이 넌지시 말을 던지자, 이태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임 요리사가 소금을 너무 안 써서 매번 음식이 심심하다고 불평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새로 온 사람에게는 짜지 않게만 하지 말라고 했더니…… 이렇게 됐습니다.”
“그건 지시를 잘못하신 것 같은데요.”
“그럴지도요.” 그가 순순히 인정하며 웃자, 유하린도 결국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짠 수프 하나에 이렇게 많은 대화가 오갈 줄은 몰랐던지라, 그녀는 새삼 이 낯선 식탁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식사 후, 유하린은 영지 사무를 돕겠다며 서재로 향했다. 서재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만큼 좁은 방이었고, 책상 위에는 누렇게 뜬 종이 뭉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태오가 쌓아둔 장부를 보고는 유하린은 저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냈다.
“이 장부, 정리가 전혀 안 되어 있네요.”
“저도 압니다만……. 저, 숫자가 특기가 아니라서요.”
“백작님이 숫자를 못하시면 영지 살림은 누가 챙기나요.”
“그건…… 그동안은 그냥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유하린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붓을 들어 장부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도에서 배운 회계 지식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손끝으로 숫자를 짚어가며 항목을 나누고 지출과 수입을 대조하는 작업이 오히려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악역영애로 낙인찍혀 도망친 처지에, 남의 영지 장부를 정리하며 안정을 찾는다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손을 움직이고 있으면 적어도 지난 며칠간의 혼란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영지 세금 수입이 이 정도면, 지붕 수리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겠어요.”
“지붕이요?” 이태오가 되묻는 순간, 마침 천장에서 물방울이 뚝 떨어져 그의 어깨를 정확히 맞췄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털었는데, 유하린은 그 우스운 상황에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백작님, 지붕에서 답이 내려온 것 같은데요.”
“……그렇군요. 하늘도 제 살림 걱정을 하시는 모양입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자, 유하린은 붓끝을 잉크병에 담그며 웃음을 참았다.
“이러다 비 오는 날엔 서재에서 일 못 하시겠어요.”
“그때는 부엌에서 하죠. 거기는 그나마 지붕이 튼튼하니까요.”
“부엌이 서재보다 튼튼한 영지라니, 처음 들어봐요.”
“저도 이런 얘기를 손님 앞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민망한 듯 뒷목을 문지르며 웃자, 유하린은 그 솔직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수도의 귀족들처럼 겉치레로 감추는 대신, 부족함을 부족함이라 말하는 이 오누이의 태도가 낯설면서도 편안했다.
그날 오후, 마당에서 서아가 유하린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손에는 방금 딴 것인지 흙 묻은 감자 몇 알이 들려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기…… 사실은요, 오빠한테 들었어요. 언니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거.”
유하린은 잠시 말을 잃었다. 억울하다는 말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이토록 어린 소녀의 입에서 듣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조여드는 듯한, 정확히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믿어주는 건가요?”
“글쎄요. 조금은요.” 서아가 시선을 피하며 작게 웃었다. 감자를 든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이, 이 말을 꺼내기까지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짠 수프 먹고 그렇게 정직하게 놀라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그런 이유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너무 단순한 거 아닌가요.”
“그럼 뭘로 판단해야 하는데요? 소문으로요? 소문은 원래 다 틀리던데.” 서아가 톡 쏘아붙이듯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이제 아까와 같은 날카로움이 없었다. 오히려 어딘가 부드러워진 온기가 섞여 있었다.
그 말에 유하린은 오랜만에 가슴 속 깊은 곳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 낯선 섬에서, 아니 이 낯선 영지에서 처음으로 작은 문 하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온기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마당 저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기 때문이었다.
“저 소리…… 설마.” 서아가 중얼거리며 유하린의 팔을 슬쩍 붙잡았다. 손끝이 차가워져 있었다.
이태오 역시 그 소리를 들은 듯 서재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의 표정에서 방금 전까지의 여유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하필…… 이 시점에.” 그가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유하린이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위험이 짙게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