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전송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음 날, 나는 서윤에게 어제 밤의 일을 말했다.
손을 대는 순간 남의 기억이 보인다는 것. 정확히는, 그 사람이 겪은 감각이 흘러들어온다는 것.
자료실 안은 조용했다. 오전이라 사람도 없었고, 서윤과 나 둘뿐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책상 위에 길게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서윤이 팔짱을 끼고 나를 빤히 봤다.
그 눈빛이 딱 '이 사람 미쳤나' 하는 눈빛이었다.
"그거 증명할 수 있어요?"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제 알았거든요."
"그럼 지금 해봐요."
서윤이 손을 내밀었다.
망설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잠깐 그 손을 봤다.
작고 마른 손이었다. 손끝에 훈련 때문에 생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상한 게 보이면 놀라지 마세요."
"놀랄 준비는 항상 하고 살아요. 저 F등급 담당관이랑 벌써 반년째 붙어 다니고 있는데요."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웅.
검은 화면.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 사이렌 같은 경보음.
서윤의 시야였다.
오늘 아침 훈련 장면. 3구역 시뮬레이션.
왼발 축이 반 박자 먼저 들어오는 순간.
근육이 팽창하는 느낌, 땀이 눈썹을 타고 떨어지는 감각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멈췄어.
숨을 한 번 골랐다.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렸다. 남의 몸으로 잠깐 살다 온 것 같은 낯선 잔향이 남아 있었다.
"...어때요?"
"오늘 아침 3구역 훈련이요. 왼발 먼저 넣는 거 성공했습니다. 땀이 눈썹으로 떨어지던 것까지 봤습니다."
서윤의 눈이 커졌다. 팔짱을 풀었다.
"그건 저만 아는 감각이었는데."
"그러니까요."
"이거, 그냥 기록이 아니잖아요."
"저도 압니다."
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였다. 세 걸음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세 걸음 갔다가 돌아왔다.
"이거 길드에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재감정 신청하면..."
"안 됩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서윤이 걸음을 멈췄다.
"왜요?"
"이게 재감정에서 어떻게 나올지 몰라요. 만약 F등급 그대로 나오면, 저는 그냥 이상한 소리 하는 F등급 직원이 됩니다. 게다가 손대야 발동되는 능력이라고 하면, 검사관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상상이 갑니까?"
"만약 다르게 나오면요?"
"그럼 다른 문제가 생기겠죠. 뭘로 나올지도 모르는데 굳이 지금 흔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신중하네요."
"8년 동안 딱지 붙어 살아보면 이렇게 됩니다. 함부로 흔들면 부러지는 게 뭔지 몸으로 배우거든요."
서윤이 잠깐 나를 보더니 화제를 돌렸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럼 이걸로 뭘 할 수 있는데요? 전송이라는 거."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머릿속에서 어제부터 정리하던 가설이었다.
"제 가설은 이렇습니다. 저는 자료를 접하면 그 안에 담긴 경험을 흡수합니다. 그리고 접촉을 통해 그걸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저한테 다른 사람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이론상으로는요."
서윤의 눈이 반짝였다. 탐색자다운 눈빛이었다. 새로운 가능성 앞에서 눈을 빛내는 건 등급이 낮든 높든 다 똑같았다.
"그럼, 예를 들어 4구역 몬스터를 이미 잡아본 다른 탐색자 경험을 저한테 전송하면..."
"제가 그 경험을 먼저 기록해야 합니다. 접촉이든, 자료든 뭔가로."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뭔가 계산이 끝난 얼굴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테스트해봐요."
우리는 첫 실험 대상을 정했다.
길드 자료실에 남아있는, 4구역 공략 성공 탐색자의 영상 기록.
서윤이 자료실 서랍을 뒤적여 태블릿을 꺼내왔다. 화면에 낡은 재생 아이콘이 떠 있었다.
"이거예요. 작년에 4구역 통과한 사람 헬멧캠 기록."
나는 그 영상을 재생하며 손을 화면에 갖다 댔다.
차가운 유리 표면이 손끝에 닿았다.
웅.
이번에는 짙은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낯선 남자의 시야. 몬스터의 붉은 눈빛이 정면에서 다가왔다.
무기를 휘두르는 감각, 충격, 반동.
칼날이 뭔가를 가르는 순간의 저항감까지 손끝에 남았다.
그리고 멈췄어.
손을 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다.
"됐습니다. 기록했어요."
서윤이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럼 넘겨줘요."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웅.
하지만 이번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윤이 눈을 감고 기다렸다.
십 초, 이십 초.
숨소리만 들렸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요."
나는 손을 놓지 않고 다시 집중했다.
웅, 웅.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서윤의 손도 조금씩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네."
나는 손을 뗐다.
"제가 뭔가 잘못 이해한 걸 수도 있습니다."
"방금은 됐잖아요. 저 손 잡았을 때는 뭔가 넘어왔다면서요."
"그건 서윤 씨의 경험이었습니다. 원래 서윤 씨 안에 있던 걸 제가 봤다가 다시 서윤 씨한테 돌려준 거였을 수도 있고요."
"그럼 남의 경험은 못 넘겨준다는 거예요?"
"모르겠습니다. 규칙이 있는데, 제가 아직 못 찾은 것 같습니다."
서윤이 팔짱을 끼고 창밖을 봤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이상한 능력이네요, 진짜."
"동의합니다."
"근데 그거 알아요? 만약 진짜 남의 경험을 넘겨줄 수 있다면, 그건 길드 역사상 처음 나오는 능력일 걸요."
"압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요."
서윤이 뭔가 더 말하려는 듯 입을 뗐다.
그 순간 자료실 문이 열렸다.
쾅.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팀장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계단으로 뛰어온 게 분명했다.
"도현 씨, 큰일 났어요."
"뭔데요."
"어제 강현우 씨가 촬영본 일부를 방송국에 넘겼는데, 편집자 실수로 4구역 사고 장면이 그대로 나갔어요. 지금 인터넷에서 난리 났고, 길드 앞에 기자들이 와 있어요."
"그게 저랑 무슨..."
"그 영상에, 강현우 씨가 도현 씨 이름 언급한 부분까지 같이 나갔어요. '길드에 정보 새는 거 아니냐'는 뉘앙스로."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저더러 정보를 흘렸다고요?"
"강현우 씨가 그렇게 몰고 가는 것 같아요. 자기 실수 덮으려고."
서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려나며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사람 진짜..."
팀장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실시간 반응이 폭주하는 게시판 화면이 떠 있었다.
『여명 길드 F등급 직원, 정보 유출 의혹』
조회수가 이미 십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댓글 창은 계속 새로고침되며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대부분이 확인도 안 된 추측이었다. 그리고 그 추측들은 이미 사실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화면을 보며, 8년 동안 조용히 살아온 시간이 하루 만에 뒤집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손끝에는 아직 조금 전 전해졌던 낯선 탐색자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그 낯선 감각보다, 지금 이 화면이 훨씬 더 낯설고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