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최하층 슬라임 셰프

5화

삼각대가 도착한 다음 날, 나는 처음으로 촬영이라는 걸 시도해봤다. B1층 게이트 앞에서 스마트폰을 세워두고, 렌즈를 이리저리 만지며 각도를 맞추는 데만 이십 분을 썼다. 처음엔 너무 위에서 찍혀서 내 정수리만 나왔고, 두 번째는 너무 아래에서 찍혀서 턱 밑 살이 부각됐다. 세 번째 시도에서야 겨우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구도가 나왔다. "오늘은 아무도 안 채집하는 최하층 슬라임으로 요리를 해보겠습니다." 대본 같지도 않은 대본을 어색하게 읊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게 이렇게 부끄러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게이트를 드나드는 다른 헌터들이 힐끔거리며 지나갔는데, 그 시선 하나하나가 마치 등에 바늘을 꽂는 것 같았다. 아, 씨발, 이거 그냥 관종짓 아닌가. 그런 생각이 스치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촬영을 이어갔다. 촬영 순서는 이랬다. 게이트 안에서 슬라임을 채집하는 과정, 채집한 걸 손끝으로 골라내는 과정(물론 이건 그냥 신중하게 고르는 척으로만 보였을 거다, 실제로는 촉감으로 무늬가 있는 개체를 구분하는 거였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삼십 분은 더 찍어야 했다), 냉동 보관 며칠 뒤 흰 줄무늬가 나타나는 걸 타임랩스로 찍은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걸 요리해서 먹어보는 장면까지. 타임랩스 촬영은 특히 고역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하루에 세 번씩 사진을 찍었는데, 서아가 옆에서 "그거 그냥 삼각대 하나 더 사서 고정해놓지 왜 매번 문을 여냐"고 지적했을 땐 정말 부끄러웠다. 나는 그런 것도 몰랐다. 서아는 편집을 도와주겠다며 자기 노트북을 들고 우리 집에 왔다. "이거 자막 좀 넣어야겠다." 그녀가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이 무늬 나타나는 부분, 여기서 좀 더 강조해야 돼. 이게 핵심이잖아." "그럼 어떻게 강조해?" "확대하고, 화살표 넣고, 소리도 하나 넣자. 뭔가 '띵' 하는 그런 거." 우리는 밤늦게까지 컷을 자르고 붙였다. 서아는 자막 폰트 하나 고르는 데도 오 분씩 고민했고, 나는 그 옆에서 커피를 세 잔이나 타 날랐다. 완성된 영상은 사 분 삼십이 초짜리였는데, 제목은 [아무도 안 가는 최하층 슬라임, 먹어봤더니 벌어진 일]로 정했다. "이거 진짜 사람들이 볼까?" 내가 물었다. "몰라. 근데 안 올리면 아예 안 볼 거잖아." 서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업로드 버튼을 누른 시각은 자정 십일 분. 처음 한 시간 동안 조회수는 딱 삼십일 회였고, 그중 대부분이 서아와 나였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늘었는데, 그게 서아가 새로고침을 누른 거였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원래 이런 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유튜브도 처음엔 다 그렇다더라, 하는 근거 없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며 잠들었다. 다음 날 오전, 조회수가 이상하게 튀기 시작했다. 오전 아홉시 — 삼백 회. 오전 열한시 — 이천 회. 오후 두시 — 만 삼천 회. 뭔가 이상했다. 손이 떨렸다. 나는 알림창을 눌러 확인했는데, 어떤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에 내 영상 링크가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F등급 헌터가 최하층 슬라임으로 뭔가 만들어냄 ㄷㄷ]이었고, 댓글이 이미 백 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댓글1] 저 무늬 진짜 신기하네 뭔지 아는사람 [댓글2] F등급이 채취S 요리S라고? 이게 말이 되나 [댓글3] 최하층 슬라임 저렇게 먹는거 처음봄 [댓글4] 근데 저거 진짜 맛있어 보이긴 함ㅋㅋ [댓글5] 저 사람 유튜브 첫 영상 아님? 편집 나름 깔끔한데 [댓글6] 잡몹으로 저런 거 만드는 거 처음 봄 신기하다 댓글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는데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좋은 쪽으로.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두근거림이었다. 그리고 그 댓글들 사이에, 익숙한 이름이 하나 끼어 있었다. [박도현] 어차피 F등급이 뭘 하겠다고. 최하층 슬라임 갖고 무늬 어쩌고 하는 거 그냥 관심병 아님? 채취S면 뭐 하냐 전투F인데 결국 잡몹밖에 못 잡는 거잖아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을 보는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목덜미까지 열이 올랐다. 이 새끼는 도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동시에 이상하게도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배 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던지듯 내려놓고 천장을 한번 봤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댓글창에 답글을 달까 잠깐 고민했다. 손끝이 화면 위에서 세 번쯤 움직이다 멈췄다. 관두자. 말로 이길 필요 없다. 결과로 이기면 된다. 나는 댓글창에 답글을 달지 않고, 대신 다음 영상을 찍기로 했다. 이번엔 좀 더 정성을 들여서, 흰 줄무늬가 나타나는 조건을 어느 정도 짚어낸 상태로 채집하는 과정과, 무늬가 있는 슬라임과 없는 슬라임의 맛 차이를 직접 비교하는 시식 장면을 넣었다. 카메라 앞에서 두 개를 나란히 놓고 한 입씩 먹으면서 표정 변화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으려 애썼는데, 실제로는 그냥 맛이 너무 달라서 표정 관리가 안 됐을 뿐이었다. 마지막에는 그냥 담담하게 한마디를 자막으로 넣었다. [F등급이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업로드하는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서아에게 미리 보여줬을 때 그녀가 "이거 완전 사이다다"라고 했던 게 조금 위안이 됐다. 이 영상은 업로드 세 시간 만에 오만 회를 넘겼다. 숫자가 늘어나는 걸 지켜보는 게 이렇게 짜릿한 일인지 몰랐다. 처음에는 오천, 그다음엔 만, 그다음엔 삼만, 그다음엔 오만. 화살표처럼 위로만 치솟는 그래프를 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새로고침을 눌렀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리고 반나절 뒤, 도현의 댓글 아래에 대댓글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대댓글1] 위에 도현이라는 분, 이 영상 보고도 그 말 할 수 있나요ㅋㅋㅋ [대댓글2] 전투 등급이랑 요리 등급이 무슨 상관인지 [대댓글3] 님이 F등급이면 이 정도 못했을 듯 [대댓글4] 도현씨 이름 검색해보니까 헌터던데 본인이 F등급 무시하다가 역풍맞은 각 [대댓글5] 이 정도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게 나았을듯 나는 그 반응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상한 통쾌함을 느꼈다. 배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F등급이라는 세 글자에 짓눌려 있던 시간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그제야 확실해졌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 다만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남들이 안 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찾아낸 것뿐이었다. "봤어? 완전 역전됐잖아." 서아가 전화로 신나서 떠들었다.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쨍쨍하게 울렸다. "도현이 그 댓글 지금 완전 욕받이 됐어. 대댓글 백 개 넘었어, 백 개!" "어, 나도 봤어." "기분 어때?" "모르겠어. 근데 좋아." 나는 웃음이 났다. 처음으로, 진짜로, 뭔가 이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헌터로 각성한 이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승리감이었다. 전투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런데 그날 밤, 세 번째 영상을 준비하려고 냉동실에서 흰 줄무늬가 가장 선명한 슬라임 하나를 꺼내 다듬는 중이었다. 냉동실 문을 열자 하얀 김이 훅 하고 얼굴을 덮쳤고, 나는 손끝으로 냉기를 느끼며 그 슬라임을 조심스럽게 도마 위에 올렸다. 칼로 겉면을 가르는 순간, 손끝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스쳤다. 저릿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정전기가 살짝 지나가는 듯한 찌릿함이었다. 나는 손을 멈추고 도마 위의 젤리를 다시 들여다봤다. 무늬가 유독 더 촘촘하고, 색도 조금 더 짙었다. 지금까지 봐온 것들과는 조금 다른 개체였다. 무늬 간격도 일정하지 않고, 어딘가 불규칙하게 얽혀 있는 느낌이었다. 손끝이 계속 얼얼했다. 단순히 차가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는 손을 몇 번 펴고 오므려보았다. 저릿함은 손목까지 조금씩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칼을 내려놓고 손바닥을 불빛에 비춰보았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상처도 없고, 붓기도 없고, 색도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그 저릿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찍어야 할 영상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에, 나는 그 감각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손을 몇 번 털었다. 카메라를 켜고, 삼각대 위치를 다시 맞추고, 조명을 조금 더 밝게 조정했다. 그렇게 촬영에 몰두하는 사이 손끝의 찌릿함은 서서히 무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 몰랐다, 이 작은 이상 반응이 앞으로 내가 다뤄야 할 힘의 진짜 대가를 처음으로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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