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폐허 마을 소탕전은 곧 전선 전체에 소문으로 퍼졌다. 정예병 열 명이 붙어야 감당할 하급 흡혈귀 무리를, 신참 하나가 단독으로 처리했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사령부로부터 정식 호출을 받았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단독 임무에서 중급 개체를 포함한 무리 전체를 격퇴한 기록'이라는 거창한 문구가 붙었는데, 나는 그 문구를 처음 읽었을 때 실감보다는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누가 이런 문구를 붙였는지 몰라도, 필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령부로 가는 차 안에서 박세아는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이도현 씨, 이거 완전 특진급 아니에요? 저도 옆에서 같이 싸웠는데 왜 저는 언급이 없죠?" 하고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는데, 나는 그 말에 굳이 대꾸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봤다. 실제로 그날 그 무리를 정리한 건 거의 내 쪽 지분이 컸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 그냥 웃어넘겼다.
사령부 마당에서는 작은 포상식이 열렸다. 깃발이 몇 개 걸려 있었고, 정렬한 병사들 사이로 나는 어색하게 걸어 들어가야 했는데, 그 시선들이 하나같이 호기심과 기대로 번쩍이고 있어서 등줄기가 괜히 뜨거웠다. 지휘관이 훈장을 목에 걸어주며 몇 마디 치사를 늘어놓았는데, 그 말들이 하나같이 '인류의 희망'이니 '전황을 뒤집을 검'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로 가득해서, 나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이 청년의 활약으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하고 지휘관이 목소리를 높였을 때, 나는 속으로 '가능성이라니, 유통기한 3년짜리 가능성인데 그걸 아시면 표정이 어떻게 바뀔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리는 없었다. 박세아는 옆에서 눈을 빛내며 손을 흔들었고, 병사들의 환호 속에서 나는 그저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을 뿐이었다. 훈장이라는 게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는데, 목에 걸리는 순간 든 감각은 영광보다는 어쩐지 압박감에 가까웠다.
그러나 포상식이 끝난 직후, 막사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는 걸 느꼈다. 처음엔 그냥 조명 탓인가 싶었는데, 눈앞이 지지직거리는 느낌이 두어 번 반복되자 그게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짚어야 했는데, 마치 모래주머니 두 개를 양다리에 매달아 놓은 듯한 무거움이었고, 그 무거움은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종류였다. 발끝부터 시작된 무게감이 무릎,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게 그대로 느껴졌고, 나는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잠시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골랐고, 손등을 들여다보니 핏줄이 평소보다 유난히 짙어 보였다. 마치 피부 아래로 검은 잉크를 흘려 넣은 것 같은 색이었는데, 그걸 한동안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손을 몇 번 쥐었다 펴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뻐근했고, 관절 사이에서 미세하게 뭔가 어긋나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기분 탓이겠지, 하고 넘기려 했지만 그 순간 눈앞에 익숙한 문구가 떠올랐다.
[경고: 계약자의 신체 부하가 임계치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구가 뜬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것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며 '임계치'라는 단어의 무게를 곱씹었는데, 마검이 수명을 깎아 쓰는 것과는 별개로, 몸 자체도 서서히 그 사용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요컨대, 수명이라는 숫자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그 줄어드는 과정 자체가 몸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그제야 체감한 것이었다. 단순히 시한이 정해진 시계가 아니라, 그 시계가 째깍거릴 때마다 톱니바퀴가 조금씩 이가 빠지는 구조였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아차린 셈이었다.
'...이거 진짜 좋게 봐줄 구석이 하나도 없네.'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3년이라는 숫자가 단순한 카운트다운이 아니라, 그 카운트다운이 흐르는 내내 몸이 조금씩 부서지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3년 뒤의 나는 어떤 몰골일지 상상하는 것조차 꺼려졌다.
나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막사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고, 다음 날 아침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훈련장에 나갔다. 스스로에게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한 무거움을 그저 '피곤한가보다' 정도로 넘기려 했다. 검을 몇 번 휘둘러보며 몸 상태를 가늠했는데, 겉으로 보기엔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여서 나는 그럭저럭 안심했다.
그런데 그 이상함을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훈련장 한쪽에서 검술 지도를 하던 한서율이었다. 그녀는 내가 검을 휘두르는 도중 순간적으로 손끝이 떨리는 걸 봤다고, 나중에 직접 말했는데,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던 걸 나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사실 나조차도 그 떨림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눈은 그런 미세한 변화까지 잡아낼 만큼 예리했던 모양이다.
"손이 떨리셨습니다" 하고 그녀가 훈련이 끝난 뒤 다가와 물었을 때, 나는 순간 대답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검을 집어넣으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기분 탓일 겁니다" 라고 얼버무렸지만, 그녀는 그 말을 순순히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기분 탓이라기엔, 최근 전투에서 유난히 무리한 움직임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만" 하고 그녀가 재차 물었고, 나는 그 눈빛에서 단순한 걱정을 넘어선 뭔가를 느꼈다.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내 입으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달까.
"무리한 움직임이라뇨, 저 원래 이렇게 싸웁니다" 하고 나는 최대한 가볍게 웃어넘기려 했지만,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나를 몇 초간 더 바라봤다. 그 몇 초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한서율은 그날 이후로 나를 지켜보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훈련 중에도, 식사 자리에서도, 그녀의 시선이 내 손끝이나 안색을 살피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아차렸는데, 밥을 먹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그건 그녀가 이미 그날 막사 뒤편에서 우연히 엿들은 대화, 그 '3년쯤 남았다'는 말을 마음 깊이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그때까지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박세아조차 그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한서율 씨가 요즘 이도현 씨 엄청 신경 쓰던데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 하고 슬쩍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글쎄요, 저야 모르죠" 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조금씩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이도현 님" 하고 그녀가 어느 날 저녁, 진지 뒤편 언덕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붉은 빛이 그녀의 얼굴 절반을 물들이고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진지했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나는 그 뒷배경이 왠지 불길하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몸에 무슨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닙니까" 하고 그녀가 물었을 때,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요, 없습니다" 하고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는데, 그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왔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한 박자도 채 쉬지 않고 튀어나온 대답이었으니, 오히려 그게 더 부자연스러웠을 거다. 한서율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그렇습니까." 하고 그녀가 짧게 대답했는데, 그 목소리에서 나는 미묘한 떨림 같은 것을 느꼈다. 확신하지 못하는, 그러나 뭔가를 억누르고 있는 듯한 어조였다. 그녀는 언덕 아래로 지는 해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행이네요" 하고 덧붙였는데,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대화를 끝내기 위한 형식적인 말인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눈치였고, 나는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짐작할 수 없어 불안이 스며들었다. 만약 그녀가 그날 밤 대화를 들었다면,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3년이라는 숫자와, 마검과, 매번 무리해서 싸우는 내 모습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지, 그녀는 이미 계산을 마쳤을지도 몰랐다.
언덕을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이 3년이라는 숫자를 누군가에게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느렸고, 어깨는 살짝 굳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단순한 착각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가 뭔가를 삼키고 있는 건지, 나는 그 뒷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제 이 비밀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