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로부터 열흘 후, 나는 정식으로 사냥꾼 부대에 배속되었다. 신참치고는 지나치게 빨리 실전에 투입된다는 뒷말이 돌았는데, 뭐, 이해는 갔다. 초소 전투에서 흡혈귀 하나를 홀로 처리한 신참을 계속 후방에 앉혀두는 것도 지휘부 입장에서는 아까운 일일 테니까. 게다가 인력은 항상 부족했다. 흡혈귀는 매일 밤 어디선가 새로 생겨나는데 사냥꾼은 그만큼 늘지 않았으니, 나 같은 변수는 오히려 반가운 카드였을 것이다.
배속 통지서를 받던 날, 부대 서기가 내 서류를 훑어보며 한마디 던졌다. "초소전 단독 처리라... 이거 진짜예요?" 나는 그냥 웃었다. 진짜냐고 물으면 뭐라 답해야 하나. '네, 사실은 마검이랑 계약해서 제 수명 깎아가면서 싼 거예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 넘어갔다. 어차피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얘기였고, 나는 굳이 반발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내겐 시간이 없었으니까.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3년이라는 숫자가 째깍거리며 줄어드는 이상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그게 아니었다.
첫 정식 임무는 국경 인근 폐허 마을에 자리 잡은 흡혈귀 무리를 소탕하는 일이었다. 임무 브리핑 자리에서 정찰대 조장이 지도를 펼치며 설명했는데, 목소리가 묘하게 긴장돼 있었다. "하급 흡혈귀 여섯에서 여덟 정도로 추정됩니다. 정찰 당시 야간이라 정확한 수는 파악이 어려웠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한 수를 모른다'는 전제가 붙는 보고는 늘 위험했다. 통상 하급 여덟이면 정예 병사 열 명 이상이 붙어야 겨우 감당하는 규모라 했는데, 나는 박세아를 포함한 여섯 명의 파티에 편성되어 그 마을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은 지루할 정도로 평온했다. 박세아는 옆자리에서 검을 손질하며 연신 재잘거렸다. "사부님, 이번엔 진짜 조심하셔야 해요. 저번 초소전 얘기 부대에 다 퍼졌던데, 다들 사부님이 무슨 괴물인 줄 알아요."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봤다. 황량한 국경 지대의 풍경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는데, 듬성듬성 서 있는 죽은 나무들 사이로 폐허가 된 초소 몇 개가 보였다. 저기서 죽은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지만 나는 그 생각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폐허가 된 집들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형체들이 보였는데, 눈짐작으로 세어도 여덟은 훌쩍 넘었다. 게다가 그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몸집이 다른 개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리고 눈빛부터가 달랐다. 정찰대가 그 존재를 놓친 모양이었다. 하급 흡혈귀 여덟이 아니라, 그 위에 서 있는 중급 개체 하나가 무리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게 뭐야..." 파티원 중 하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나는 검을 고쳐 쥐며 상황을 가늠했다. 중급 개체가 팔을 휘두르자 파티원 둘이 그대로 튕겨나가 벽에 처박혔다.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잔해가 우수수 떨어졌고, 튕겨나간 두 명은 그대로 정신을 잃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박세아가 다급히 나를 향해 소리쳤다. "사부님, 이거 저희 급이 아니에요!"
그 말이 맞았다. 남은 병사들의 얼굴에는 이미 패배를 예감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고, 후퇴 신호를 올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조장이 붉은 신호탄을 꺼내 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후퇴 신호. 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마을 안쪽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들, 그리고 저 두 명의 부상자를 이대로 두고 갈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흡혈귀 무리는 도망치는 인간을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여러 계산을 했다. 후퇴하면 아마 저 부상자 둘은 등을 물릴 것이고, 조장까지 포함해 몇 명은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숨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스쳤는데, 지금까지는 튀지 않으려고 힘을 아꼈지만, 이대로 후퇴하면 이 자리에서 몇 명은 죽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초소전에서 한 번 판을 깬 전적이 있었다. 이제 와서 숨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마검에 힘을 실었다. 검신이 붉게 물들며 진동했고, 손끝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팔뚝까지 올라왔다. 마치 얼음물에 손을 담근 것 같은, 그러면서도 뭔가가 빨려나가는 듯한 이상한 감촉이었다.
[계약자의 요청을 확인합니다. 전력 발현 승인.]
문구가 시야에 떠오르는 순간, 나는 이미 땅을 박차고 있었다.
부우욱...!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하급 흡혈귀 셋을 단숨에 베어냈다. 놈들의 몸이 반쪽씩 갈라지며 검은 재로 흩어지는 모습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고, 그 잔재가 얼굴에 닿는 감촉이 마치 마른 재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잔여 수명이 소모됩니다. -1.2일]
경고가 시야 구석에 떠올랐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뒤에서 병사 하나가 "저, 저게 신참이라고?"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도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급 개체가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손톱을 세웠고, 나는 그 손톱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검을 밀어 넣었다.
콰크작!! 콰크작!!
두 번의 격돌 끝에 중급 개체의 어깨가 뜯겨나갔고, 놈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검을 타고 전해지는 반동이 팔뼈까지 저릿하게 울렸는데, 초소전 때보다 힘이 확실히 강했다. 이놈은 그냥 중급이 아니라 중급 중에서도 상급에 가까운 개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잔여 수명이 소모됩니다. -2.5일]
이라는 문구가 다시 떠올랐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숫자가 쌓이는 속도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한 번의 교전으로 벌써 3일 가까이가 사라진 셈이었다. 이 속도라면, 오늘 하루만으로도 일주일 치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계산을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남은 흡혈귀들이 파티원을 노리고 있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남은 하급 개체들을 순식간에 정리했다.
퍼억!! 퍼억!!
검이 몸을 관통할 때마다 놈들이 짧은 비명과 함께 흩어졌고, 나는 그 흩어지는 재 사이를 가르며 마지막 표적, 중급 개체를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놈은 이미 어깨 한쪽을 잃은 채 균형을 잃고 있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마지막으로 중급 개체의 심장을 관통했을 때, 놈은 재가 되어 흩어졌고, 마을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비명과 파열음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지는 그 낙차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파티원들은 넋을 놓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중 누구도 신참인 내가 이만한 무리를 단독으로 격퇴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세아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나는 그저 검을 거두며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목구멍이 타는 것처럼 뜨거웠는데, 이게 체력 소모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깎여나간 수명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 사부님..." 박세아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이거, 이거 진짜 사람이에요? 아니 흡혈귀도 아니고, 대체..." 나는 대충 손을 흔들며 대답을 피했다. "일단 부상자부터 확인하자." 그 말에 조장이 정신을 차린 듯 부하들을 향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다들 서둘러 튕겨나갔던 두 명에게로 달려갔다. 다행히 둘 다 골절 정도로 끝난 모양이었다. 죽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전투가 끝나고, 다른 병사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부상자를 살피는 사이, 나는 마을 외곽 담벼락에 홀로 몸을 기댄 채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손이 아직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그게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잔여 수명: 2년 361일]
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는데, 처음 계약 당시 3년 27일이었던 것에 비하면 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상당량이 깎여나간 셈이었다. 간단한 계산이었다. 3년 27일에서 2년 361일을 빼면, 이 세계에 떨어진 뒤 지금까지 총 31일이 사라진 셈이었고, 오늘 하루 전투에서만 4일 가까이가 날아갔다. 이런 강도의 전투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3년이라는 숫자는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바닥을 드러낼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더럽게 빠르네.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애초에 3년이라는 숫자 자체가 시한부치고는 후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속도로 깎여나가면 실질적으로 남은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다는 얘기였다. 어쩐지, 이 정도로 빨리 닳는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것 같기도 했다. 애매하게 오래 끄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끝이 정해진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뒤틀린 위안이었다.
멀리서 박세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부님! 뭐 하세요, 이리 오세요!" 나는 담벼락에서 몸을 떼며 표정을 정리했다. 방금까지 있었던 계산과 감상 같은 건, 남들에게 보일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누구도 이 숫자를 알지 못했다. 박세아도, 다른 병사들도, 마을을 구한 영웅이 그 대가로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나 역시 굳이 알릴 생각이 없었다. 조장은 나중에 이 전투를 보고서에 어떻게 적을지 고민하는 눈치였고, 병사들은 벌써부터 나를 두고 이런저런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신참인데 중급 개체를 혼자 잡았다더라', '검이 좀 이상한 것 같다더라' 같은 말들이 귓가에 스쳤지만 나는 그저 무심히 흘려들었다.
그날 밤, 진지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문득 오늘 사용한 숫자들을 다시 떠올렸다. 4일. 오늘 하루에만 4일이 사라졌다는 계산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 계산이 자꾸만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그때는 아직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마차 바퀴가 돌덩이에 걸려 덜컹거릴 때마다 몸이 흔들렸는데, 나는 그 흔들림 속에서도 계속 같은 숫자를 되새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몇 번의 전투를 더 치를 수 있을까. 그 답을 알아내기에는, 아직 내가 가진 정보가 너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