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12년 전, 4월.
그때 나는 왕도의 마법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스무 살이었다.
졸업 시험에서 3급 판정을 받았다.
1급도 아니고 2급도 아닌, 딱 밥벌이만 가능한 등급이었다. 같은 반 동기 열두 명 중에 열 명이 2급 이상을 받았다. 나머지 두 명 중 하나가 나였다.
집안에 돈이 없어 개인 공방을 열 형편도 안 됐다.
어머니는 왕도 외곽의 방직공장에서 실을 감는 일을 했고, 아버지는 내가 열네 살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왕궁 부속 마법 시술소에 임시직으로 들어갔다.
월급은 은화 열두 냥.
왕도에서 방 한 칸짜리 셋집을 구하기에도 빠듯한 돈이었지만, 그거라도 벌어야 했다.
그곳은 마력 폭주를 일으킨 아이들을 잠시 맡아두는 격리소 같은 곳이었다.
정식 명칭은 ‘왕립 마력 안정 시술소’였지만, 시술소 사람들은 그냥 ‘지하실’이라고 불렀다.
건물 자체는 왕궁 부속답게 흰 대리석으로 지어졌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곳곳에 이끼가 껴 있었다.
그곳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대개 귀족가의 서자들, 신분이 낮아 챙겨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멀쩡한 자식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시술소 지하실에서, 나는 처음 강도윤을 만났다.
지하 3층, 가장 안쪽 방이었다.
철문에는 손바닥만 한 관측창이 하나 뚫려 있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열한 살이었고, 온몸이 사슬 같은 마력 문양으로 덮여 있었다.
문양은 팔목에서 시작해 목까지 타고 올라와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 그의 몸에 쇠사슬을 새겨 넣은 것처럼 보였다.
손끝에서 새어 나오는 검푸른 마력이 벽을 태우고 있었다.
돌벽인데도 그 부분만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매캐한 냄새가 관측창 틈으로 흘러나왔다.
“이 아이는 사흘 안에 죽습니다.”
담당 마법사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는 손에 든 서류판을 넘기며 이미 다음 아이의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마력 그릇이 너무 커서 제어가 안 돼요. 폐기 처분해야 할 것 같은데.”
‘폐기 처분’이라는 말이 마치 낡은 가구를 버리는 이야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입사한 지 보름 동안 나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신입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가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아이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말은 끊기지 않았다.
“당신이 책임질 거야?”
담당 마법사가 서류판에서 눈도 떼지 않고 물었다.
그의 말투에는 신입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제가 해볼게요.”
내가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깨달았다.
3급 마법사가 무슨 수로 이런 아이를 살린다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지하실 바닥에 앉아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바닥은 차가웠지만, 그의 손은 뜨거웠다.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게 느껴졌는데도 놓지 않았다.
“으…… 으어어엉…….”
아이가 낮게 울부짖었다.
목이 다 쉬어서 제대로 된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이렇게 혼자 갇혀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그의 손을 붙잡은 채 말했다.
“내가 옆에 있을게.”
아이는 내 말을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계속 몸을 떨었다.
나는 3급 마법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진정 마법을 아이의 마력 회로에 흘려보냈다.
대단한 힘이 아니었다.
그저 마력이 흐르는 길을 아주 천천히, 아주 얕게 다듬어주는 정도였다.
학교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마법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얕은 흐름이 아이의 폭주하는 마력을 아주 조금씩 눌러주었다.
새벽 세 시쯤, 벽을 태우던 검푸른 빛이 조금씩 가라앉는 게 보였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일주일 후.
아이는 죽지 않았다.
담당 마법사는 그 사실을 보고받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대신 아이는 시술소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구석방에 방치되었다.
식사도 하루에 한 번, 딱딱한 빵 한 조각과 물 한 컵이 전부였다.
“저 아이 이름이 뭔가요?”
내가 물었다.
“강도윤.”
담당 마법사가 대답했다.
그는 서류판을 뒤적이며 마치 재고 목록을 확인하듯 말을 이었다.
“3황자예요. 그런데 어머니가 미천한 신분이라, 다들 죽기를 바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구석방의 의미를 알았다.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은 걸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밤 그 방을 찾았다.
낮에는 다른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 근무가 끝나면 몰래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그의 마력 회로에 진정 마법을 흘려주고, 조금씩 제어법을 가르쳤다.
“숨을 천천히 쉬어봐.”
내가 말했다.
“마력이 뜨거워질 때, 배꼽 아래로 밀어 넣는다고 생각해봐.”
아이는 처음 며칠 동안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숨을 쉬고, 손을 내맡길 뿐이었다.
도윤은 처음에는 말이 없었다.
나는 매번 혼자 말을 걸었다.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시술소 위층에서 무슨 소란이 있었는지, 그런 자잘한 이야기들이었다.
대답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 달쯤 지나서야,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 저를 도와주세요?”
그가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성대 같았다.
“그냥, 살아 있는 게 좋으니까.”
내가 대답했다.
“저는 필요 없는 애예요.”
도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버지도, 형들도 다 저를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 말을 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혼자 되뇌던 문장을 그대로 뱉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열한 살짜리 아이가 이런 말을 이렇게 담담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대신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직도 손끝에는 미열이 남아 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네가 살아 있어서 좋아.”
내가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그도 느꼈는지, 도윤의 몸에서 조금씩 힘이 풀렸다.
그날 도윤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다.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
나는 그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그저 그가 다 울 때까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도윤의 눈물이 멎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선생님.”
“응?”
도윤은 한동안 입술만 달싹였다.
대답을 듣는 것조차 두려운 사람처럼,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내일도 와요?”
나는 작고 뜨거운 손을 다시 감싸 쥐었다.
“응.”
짧게 대답한 뒤, 아이가 확실히 들을 수 있도록 다시 말했다.
“내일도 올게.”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손을 잡은 손가락에서, 아주 조금 힘이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