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얼떨결에 대륙 흑막

1화

공방 문을 열자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청하촌의 아침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냇물이 어는 소리가 들리고, 굴뚝마다 연기가 늦게 피어올랐다. 문지방을 넘어서면 발밑에서 나무 마루가 뜨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6년 동안 밟아 닳은 자리였다. 나는 화로 앞에 손을 뻗어 작은 불씨 마법을 걸었다. 손끝에서 겨우 성냥불만 한 화염이 일었다가 장작에 옮겨붙었다. 장작이 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3급 마법사가 부릴 수 있는 불이란 이 정도가 한계였다. 1급이나 2급 마법사였다면 손짓 한 번에 방 전체가 데워졌을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3급이었고, 3급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6년을 버텼다. 스물여섯에 마법 학교를 나온 뒤로 6년째, 나는 이 공방에서 옷을 수선하고 그릇에 금 간 걸 붙이고 곰팡이를 지우는 일로 먹고살았다. 대현제국의 수도에서는 이런 걸 잡일이라 부른다고 들었다. 여기 청하촌에서는 그냥 '이서인네 공방'이라 불렀다. 선반에는 낡은 유리병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안에 말린 약초와 정화수가 담겨 있었다. 창문 옆에는 내가 직접 짠 커튼이 걸려 있었는데, 색이 바래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불이 완전히 붙자, 나는 손을 털고 화로 옆에 놓인 낡은 의자에 앉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올 리는 없었지만, 나는 문 앞에 걸어둔 나무 간판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서인네 공방'이라고 새겨진 글씨는 내가 직접 칼로 판 것이었다. 그 간판을 볼 때마다 뭔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자리는 내 것이었다. 문에 걸린 종이 울린 건 아침 볕이 겨우 창틀에 걸릴 때였다. "서인 씨, 있소?" 박천수 아저씨였다. 숲에서 나무를 베어 파는 이웃이었는데, 겨울마다 손이 갈라져 우리 공방을 찾았다. "들어오세요, 아저씨." 내가 말했다. "이 손 좀 봐줘. 또 쩍쩍 갈라졌어." 그가 두 손을 내밀었다. 손등에 세 갈래로 갈라진 상처가 나 있었다. "이번엔 좀 깊네요." 내가 상처를 살피며 말했다. "장작 패다 나무껍질이 튀었지 뭐."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나는 물 정화 마법으로 상처를 씻어내고 연고를 발라주었다. 연고는 내가 직접 조합한 것이었다. 캐모마일 기름과 밀랍을 섞어 만든 것이라,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값이 훨씬 쌌다. "고마워, 항상." 박천수 아저씨가 손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금방 나을 거예요. 사흘 정도는 물에 담그지 마시고요." 내가 당부했다. 그는 은화 두 닢을 계산대 위에 올려두었다. "요즘 영주님 댁 삼남이 이쪽 왔다는 말 들었나?" 박천수 아저씨가 문을 나서며 말했다. "한도훈 도련님이요?" 내가 되물었다. "그래, 그 사람. 성질이 아주 못됐다더라고." "뭐 하러 이런 시골까지 왔대요?" 내가 물었다. "몰라, 요즘 영지 이곳저곳 둘러본다고 하더구먼. 뭔 사업 벌인다고."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손끝이 살짝 굳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3년 전쯤인가, 마을 축제에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얼굴이었다. 나를 알아볼 리도 없었다. '별 상관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이름을 마음 한편에 밀어두었다. 박천수 아저씨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한둘이 아니었다. 서너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공방 앞에서 멈췄다. 나는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검은 말 세 마리, 그 위에 앉은 사람들의 옷깃에는 한도가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 황금색 실로 수놓은 매 문양이었다. 영주 가문의 상징이라는 걸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선두에 있는 남자가 말에서 내렸다. 검은 벨벳 코트, 은장식이 박힌 장검, 스물여덟쯤 되어 보이는 얼굴에는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장화는 흙이 하나 묻지 않은 채 반들거렸다. 한도훈이었다. 가슴이 갑자기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문 쪽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여기가 그 공방인가?" 그가 문을 발로 밀며 물었다. 짝!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문틀에 걸려 있던 종이 요란하게 딸랑거렸다. "어... 네, 맞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주인이 너야?" 한도훈이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그의 시선이 내 낡은 앞치마와 손등의 물 얼룩을 지나갔다. "네." "이딴 낡은 데를 여태 끌고 있었단 말이지." 그가 벽을 손끝으로 훑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먼지가 손에 다 묻잖아." 그는 코트 자락으로 손끝을 닦아냈다. 마치 오물을 만진 것처럼.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나를 알아볼 리는 없었다. 3년 전 축제에서 잠깐 스쳤던 여자를 기억할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그의 눈빛에서 뭔가 낯익은 오만함이 스쳤다. 나는 그게 뭔지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가 뭔지 아나?" 한도훈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이 자리, 마음에 들어서." 그가 공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낡은 선반, 유리병 속 약초들, 손수 짠 커튼을 하나씩 눈으로 짚었다. 그의 발걸음마다 마루가 삐걱거렸다. "북쪽 대로가 뚫리면 여기가 딱 중심이 될 거란 말이지."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길목 좋고, 땅도 넓고."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팔짱을 낀 손가락으로 자기 팔뚝을 두드렸다. "이 공방을, 비워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6년을 쌓아온 자리였다.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오게 만든 것도, 겨우 갚아나가고 있는 빚도 다 이 벽 안에 있었다. 이 공방 하나로 밥을 먹고, 이 공방 하나로 겨울을 났다. "저...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네 사정이고." 한도훈이 대답을 잘라먹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이 자리야." 그는 마치 벌레 이야기를 하듯 무심하게 말했다. "보상은... 해주시는 겁니까?" 내가 겨우 물었다. "보상?" 그가 피식 웃었다. "내가 왜 그런 걸 해야 하지?" "여긴 제 명의로 등록된 곳이라..."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등록이야 무효로 만들면 그만이지." 그가 손짓하자 뒤에 있던 부하 둘이 성큼 걸어와 문가에 섰다. 체격이 크고, 허리에는 곤봉을 차고 있었다. 한 명은 얼굴에 흉터가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팔뚝이 내 허리만큼 두꺼웠다. 나는 그들의 발소리가 마루판을 울릴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여기서 밀리면 안 돼.'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건 내가 지켜온 거야.' 하지만 입을 여는 순간, 목소리가 떨려 나올 것 같았다. '힘으로는 절대 못 이겨.'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3급 마법으로 저 셋을 어떻게 상대해.' "사흘 주지." 한도훈이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 안에 짐 싸서 나가. 안 그러면, 내가 직접 치워줄 테니까." 그는 말끝에 웃음을 흘렸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사흘이면 충분하지 않나? 짐이야 많지도 않을 텐데." 그가 선반 위 유리병 하나를 손끝으로 밀어 넘겼다. 쨍그랑! 유리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안에 있던 말린 약초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이구, 이런." 그가 전혀 미안하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말에 올랐다. 부하들도 뒤따라 사라졌다. 말발굽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문가에 서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병 조각과 흩어진 약초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겨우 무릎을 굽혀 깨진 조각을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손끝이 떨려 몇 번이나 조각을 놓쳤다. 창밖으로 보이던 그의 뒷모습이, 3년 전 축제에서 봤던 그 얼굴과 겹쳐졌다. 분명 어딘가에서 본 표정이었다. 저 오만한 웃음, 저 무심한 손짓. 왜 그가 낯설지 않았는지, 그제야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유리 조각을 손에 쥔 채로 굳어버렸다. 기억 저편에서 뭔가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