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학원장실은 늦가을 오후의 햇살이 창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는 시간이면 유독 서류 냄새와 잉크 냄새가 짙어지는 곳이었는데, 그 냄새는 이 학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어 벽지에까지 스며든 듯했다. 마법 학원의 다른 교사들은 이 방을 두려워했다. 성적이 나쁜 학생을 불러 훈계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교사를 소환해 조용히 짐을 싸게 만드는 곳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도현은 이 방에 올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 편이었는데, 그것은 한서은이라는 사람이 언제나 산더미 같은 업무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표정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감독관 방문에 대한 대비책을 논의하러 그녀를 찾은 날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이도현은 생각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섰을 때 책상 위에는 여전히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한서은은 깃펜을 든 채 뭔가를 빠르게 적어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 서류를 전부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평소라면 서류를 보며 대화를 나누던 그녀가 이렇게 정면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드물었다. 그 시선의 무게가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도현 교사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교사님께서 이 학원에 부임하신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아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런 식의 대화가 아니었는데,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곧 일 년이 됩니다." 그가 답했다.
"정확히는 열 달이지요." 한서은이 정정했다. 손끝으로 책상 위 달력을 가볍게 두드리며 하는 말이었는데, 그 세밀함이 그녀다웠다. 그녀는 무엇이든 대충 넘기는 법이 없었다.
"그 열 달 동안 교사님은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녀가 이어 말했다. "수업은 정확한 시간에 시작되고 끝났으며,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사적인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보고서마다 교사님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았지요. 성실, 신중, 무난.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이도현은 그 말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성실하고 신중한 것이 어째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그게 왜 문제입니까." 그가 물었다.
한서은은 옅게 웃었는데, 그 웃음에는 어딘가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오랫동안 이 자리에 앉아 수많은 교사들의 흥망을 지켜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끌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특히 왕녀와 성녀 두 분이 동시에 관심을 보이는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 말에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왕가와 교단. 이 나라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두 세력의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나란히 나온 것이다.
"학원장님은 저를 보호해 주시는 겁니까, 감시하시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다소 무례한 질문이었으나, 이 상황에서는 그도 명확한 답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서류 냄새 가득한 이 방 안에서 완곡한 말들로 시간을 끄는 것보다, 차라리 직설적으로 묻는 것이 나았다.
한서은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가볍게 쓸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대답을 고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낮게 답했다.
"둘 다입니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그에게 신뢰를 주었다. 완곡하게 보호한다고만 했다면, 혹은 감시가 목적이 아니라고 부정했다면 오히려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둘 다라고 말하는 사람 쪽이 훨씬 믿음직했다.
"교사님께 드릴 조언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가 이어 말했다.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마십시오. 왕가와 교단, 둘 중 하나라도 편애했다는 인상을 준다면, 교사님은 이 학원에서 버틸 수 없게 될 겁니다. 그 순간 저조차도 교사님을 지켜드릴 수 없습니다."
"저조차도라니요." 이도현이 물었다.
"제가 이 학원의 장이라 해도, 왕가와 교단이 동시에 등을 돌린 교사를 지킬 방법은 없다는 뜻입니다." 한서은이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학원은 독립된 기관이지만, 독립이란 것도 결국은 양쪽이 서로를 견제하는 균형 위에서만 유지되는 것이니까요."
그 말은 경고이자 동시에 그녀 나름의 배려였다는 것을, 이도현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가 서류를 밀어놓고 정면으로 마주 앉은 이유도, 이 이야기를 다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마침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고, 노크 소리와 함께 김다혜가 들어섰다. 평민 출신 특待생이자 화의 별의 힘 각성자로, 게임 속에서는 늘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캐릭터로 그려졌던 소녀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것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는 것을 이도현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밤을 새워 마법 연습을 반복한 사람 특유의, 눈꺼풀이 무거운데도 눈동자만은 이상하게 번뜩이는 그런 얼굴이었다.
"학원장님, 성적 재심사 결과를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다혜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 안에 숨은 초조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문 앞에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부터가, 이미 좋지 않은 결과를 예감하고 있는 사람의 자세였다.
한서은은 서류 하나를 뒤적이다 그녀에게 건넸는데, 그 내용을 읽은 다혜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종이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이도현은 놓치지 않았다.
"이번 학기에도 특待생 자격 유지 기준에 못 미쳤습니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다음 학기에도 이 상태라면, 저는 퇴학입니다."
퇴학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평민 출신에게 이 학원에서의 퇴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도현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단순히 학업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애초에 이 세계에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유일한 기회를 잃는 것과 같았다.
그 말에 이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별다른 계산 없이 나온 말이었으나, 다혜의 눈동자가 그 순간 흔들리는 걸 그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위로를 받아들이는 눈빛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건드린 사람의 눈빛에 가까웠다.
"교사님이 무슨 상관이세요." 그녀가 반문했는데, 그 말투에는 방어적인 냉소가 짙게 배어 있었다. "저는 무리하지 않으면 여기 있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에요."
한서은은 그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치 이런 상황을 몇 번이고 지켜본 사람처럼, 그 표정에는 어떤 예측도 놀라움도 없었다.
"자격이라는 게, 꼭 무리해서 얻어야 하는 겁니까." 이도현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평민한테는 그래요." 다혜가 즉각 답했다. "특待생 자리 하나를 두고도 열 명이 넘게 경쟁하는데, 저 하나가 여유를 부리면 그 자리는 다른 사람 것이 되니까요."
그 대답에 담긴 절박함을, 이도현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원칙은 거리를 두는 것이었으나, 이 소녀의 눈빛 속에 담긴 것은 그가 외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한서은이 방금 전 그에게 건넨 경고,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말라는 그 말이 머릿속에서 다시 울렸다. 하지만 다혜의 앞에 서 있는 지금, 그 경고가 과연 이 순간에도 적용되는 것인지 이도현은 확신할 수 없었다.
창밖으로 늦가을 바람이 유리창을 흔들며 지나갔고, 학원장실 안의 세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