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던전 침대 짓는 마도구사

2화

궁성 정문을 나서면서 나는 등에 짊어진 짐 가방의 무게를 다시 확인했는데, 개인 물품이라고 허락받은 것이 고작 여벌 옷 몇 장과 낡은 마도구 제작 도구함, 그리고 삼 년치 급여 중 마지막 한 달치 금화뿐이었다. 이 정도면 딱 삼 년 계약직이 잘리면서 받는 퇴직금 봉투랑 비슷한 무게 아닌가. '퇴직금이 이 정도라면, 전생 회사가 오히려 양심적이었군.' 적어도 그쪽은 퇴직금 지급 규정이라는 게 문서로 남아 있었으니까. 이곳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나가라'는 한 마디로 삼 년을 정리해 버렸으니, 문서화 하나는 전생 쪽이 우위였다. 그 생각을 하다가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새벽하늘이었는데, 옅은 남색에서 서서히 밝은 회색으로 번져가는 그 경계가 묘하게 선명했다. 지난 삼 년 동안 이렇게 여유롭게 하늘을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세어보려다가 이내 관두었다. 세는 것조차 서글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나는 지하 작업실 창문 없는 벽을 보며 하늘의 색을 상상하는 쪽이었으니, 실물을 본 횟수는 아마 손가락 안에서 접힐 것이었다. 그 대신 나는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전생부터 이어져 온 하나의 소망을 다시 꺼내보았다. 완벽한 침대에서, 완벽한 이불을 덮고,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는 완벽한 밤을 보내는 것. 회사원으로 죽었을 때도, 마도구사로 착취당할 때도 변하지 않은 유일한 꿈이었다. 야근 콜에 새벽 세 시에 깨던 삶이나, 궁정 마도구사로서 이제하의 호출에 새벽 세 시에 깨던 삶이나, 결국 잠을 뺏기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똑같았다는 게 우습긴 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꿈을 이룰 자유를 얻었다. 문제는 자유와 함께 노숙자가 될 위기도 얻었다는 점이었지만. 나는 왕도 외곽의 용병 길드로 향했다. 길드 건물은 오래된 석조 건물이었는데, 벽면 곳곳에 낡은 사냥 기념패와 몬스터 뼈 장식이 걸려 있어서 들어서는 순간부터 비린 짐승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곳 게시판에는 각종 의뢰지가 겹겹이 붙어 있었는데, 대부분은 호위나 잡초 제거, 하수구 몬스터 소탕 같은 시시한 것들이었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다. [단월 던전 3층 이하 재료 회수 의뢰 — 심층 마정석, 몽환수(夢幻樹) 뿌리, 수정 이슬 채집. 보상 후불.] 몽환수 뿌리와 수정 이슬. 나는 그 두 단어를 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는데, 몽환수 뿌리는 수면 유도 마도구의 핵심 재료였고 수정 이슬은 온도 유지형 마도구의 촉매로 알려져 있었다. 내 전생의 지식과 이 세계의 마법 이론을 결합하면, 그 두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떠올랐다. 완벽한 침대. 나는 그 자리에서 의뢰지를 뜯어냈다. 옆에 서 있던 덩치 큰 용병이 흠칫하며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오직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매트리스의 설계도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접수대의 직원은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건조하게 물었다. "파티원은 몇 명입니까?" 그 시선이 딱히 무시하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대하는 눈빛도 아니었다. "혼자입니다." 나는 최대한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직원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는 걸 보고 아차 싶었다. "단월 던전 3층 이하는 최소 4인 파티 권장입니다. 등급은 어떻게 되십니까?" "등급이라니요?" 내가 되묻자 직원은 한숨을 살짝 내쉬며 설명을 이어갔다. "모험가 등급 말입니다. F부터 S까지 있고, 등록이 안 되어 있으면 임시 등급 F로 처리됩니다." 직원의 목소리는 마치 미리 준비해둔 안내문을 읽는 것처럼 무미건조했다. '전 궁정 마도구사가 F등급이라니, 이거 참 서열이 정직하군.' 삼 년간 왕실 예산의 절반을 삼키던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몸이 이제는 이름도 없는 최하급 취급이라니,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게 잔인했다. 나는 속으로 실소를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등록 서류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서류에는 특기란도 있었는데, 잠시 고민하다가 '즉석 마도구 제작'이라고 적었다. 직원은 그 항목을 보고도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마 이런 항목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는 게 분명했다. 결국 나는 파티를 구하지 못했다. 세 곳의 게시판을 더 돌아다녔지만, F등급 무명 마도구사와 함께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용병은 없었다. 한 용병은 내 서류를 보고 대놓고 "F등급이면 짐만 될 텐데요"라고 말했고, 다른 무리는 그냥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어떤 여자 용병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동료에게 "저런 사람 데려가면 3층에서 죽는다"라고 대놓고 말했는데, 그 목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들려서 나는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려야 했다. '뭐, 상관없지. 시끄러운 놈들이랑 같이 가느니 혼자 가는 게 더 조용하겠지.' 나는 짐짓 여유를 부리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실 등록소를 나오는 발걸음이 조금 무거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삼 년간 나를 부려먹던 상급자들과 함께 있을 때도 이런 고독감은 없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대신 나는 남은 금화를 털어 방어형 마도구 몇 개와, 즉석에서 만든 은신형 부적을 챙겼다. 삼 년간 왕실 마도구사로 일하며 익힌 잡기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응급 제작이었는데, 재료와 마력만 있으면 웬만한 소형 마도구는 즉석에서 뽑아낼 수 있었다. 시장 골목의 좌판에서 마정석 파편을 흥정하는 동안, 상인은 내가 F등급 서류를 손에 쥐고 있는 걸 보고는 값을 살짝 더 올려 부르려 했지만, 나는 삼 년간 왕실 재무관과 씨름했던 협상력으로 결국 원래 시세보다 조금 싼 값에 재료를 챙길 수 있었다. 이런 데서 쓸모가 있을 줄이야. [제작 스킬: 즉석 조합 Lv.3] [보유 재료: 마정석 파편 x12, 은사(銀絲) x4, 부적지 x8] 시스템 창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진짜로 웃었다. 왕궁에서는 이 시스템이 오직 이제하의 명령을 처리하기 위한 도구였지만, 이제는 온전히 내 것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등에 진 짐 가방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던전 입구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밭을 가는 농부들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고, 멀리 보이는 산줄기는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제부터 만드는 모든 것은, 오직 내가 잘 자기 위한 것이다.' 그 결심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는, 던전 입구에 도착하고서야 깨달았다. 마부가 마차를 세우며 던진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단월 던전은 3층까지는 초보용이지만, 그 아래로는 등록된 지도가 없습니다. 몬스터 웨이브 예측도 안 되니 조심하십시오." 마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짐 가방과 서류를 슬쩍 보고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 던전 입구는 커다란 바위산의 갈라진 틈처럼 생겨 있었고, 입구 주변에는 이미 몇 개의 파티가 모여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지나며, 혹시나 나를 받아줄 파티가 있을까 잠시 기대했지만,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짐 가방을 고쳐 메고 던전 입구의 어두운 아가리를 향해 걸어 들어갔는데, 발밑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습기가 목덜미까지 스며드는 순간, 어쩐지 이번 잠자리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훨씬 험난할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입구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축축한 공기 속에는 희미하게 단 냄새가 섞여 있었는데, 그것이 몽환수의 향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냄새인지는, 그 순간의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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