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문이 벌컥 열린 건 새벽 미명, 아직 닭도 울지 않은 시각이었다.
"일어나." 곽복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갈랐다. 절뚝거리는 발소리가 문턱을 넘어오며 마룻바닥을 무겁게 눌렀다. 뚱뚱한 체형에서 나오는 발걸음이라기엔 이상하게 절도가 있었는데, 그 절도는 신중함이 아니라 원한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3년 전 임강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청석으로 다리가 부러졌다던 그 사내. 그때 곽복이 매를 맞으며 내뱉었다는 한마디가 원신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다음엔 반드시 갚아준다." 그리고 지금, 3년이 지난 그 다음이, 하필이면 내가 이 몸에 들어온 순간에 도착한 셈이었다.
억울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억울하다. 나는 임백이 아니고, 임백의 죄를 짓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런 걸 따져주는 세계가 아니었다. 몸이 곧 죄였고, 얼굴이 곧 판결문이었다.
"선산으로 간다. 삼 년." 곽복이 짧게 말했다. 그 말투에는 동정도, 조롱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냥 사실을 전달하는 통보였고, 그게 더 무서웠다. 마치 날씨를 말하듯, 마치 밥때가 됐다고 말하듯, 곽복은 내 삼 년을 그렇게 던지고 돌아섰다.
아, 조졌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양 고갈, 근기 파괴, 종신 불능 판정을 받은 몸으로 유배지행이라니. 이건 사형선고에 이송 서비스까지 얹어주는 거 아닌가. 심지어 이송 서비스도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마차는커녕 들것도 없었다.
시비 둘이 양쪽에서 부축했다. 나는 앙상한 다리로 겨우겨우 걸음을 옮겼다. 발을 뗄 때마다 무릎에서 뭔가 갈리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어찌나 선명한지 내가 걷는 게 아니라 뼈가 걸어가는 것 같았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에 흙먼지가 들러붙었고, 손톱 밑의 검은 핏기가 아침 햇살 아래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원신 임백의 몸은 정말이지 볼품이 없었다. 수련하다 몸을 망친 게 아니라 몸을 망치려고 수련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곽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 걸었다. 절뚝, 절뚝. 그 규칙적인 파열음이 앞서 나가며 나를 재촉했다. 뒤돌아보지 않는 이유는 뻔했다. 내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넘어져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산길은 좁고 가팔랐다. 발밑으로 자갈이 굴렀고, 이따금 나무뿌리가 뱀처럼 튀어나와 발목을 채는 통에 나는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첫 번째는 시비가 잡아줬다. 두 번째는 내가 겨우 균형을 잡았다. 세 번째는,
정말로 넘어졌다.
조상묘가 늘어선 구역이었다. 이끼 낀 석물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로 이름 모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관리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 그 묘역은, 이 유배지가 얼마나 버려진 땅인지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발이 뿌리에 걸리는 순간 몸이 앞으로 쏠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균형을 잡으려 했다. 손바닥이 닿은 곳은 회백색 석재였다.
차가웠다. 그리고 이상했다.
손끝에서 시작된 미세한 떨림이 팔을 타고 올라오며,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통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텅 비어 있던 단전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정말로 아주 작은 온기가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실낱같은 기운이었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뭐야, 이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종신 불능 판정을 받은 단전에서 뭔가가 반응한다는 건,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손을 떼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떴다.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고,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석물의 표면을 훑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삼각으로 솟은 봉우리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정상부가 살짝 왼쪽으로 기울어진 능선과,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세 개의 골짜기 무늬가 눈에 익었다.
청운봉.
내가 죽기 전, 매주 등산복 차림으로 오르내리던 그 산이었다. 정상 표지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내려다봤던 그 능선의 굴곡이, 지금 내 손바닥 아래 새겨져 있었다. 심지어 그 표지석 바로 옆에 있던 갈라진 바위 모양까지, 조각의 오른쪽 하단에 똑같이 새겨져 있는 게 보였다.
등줄기에 소름이 좍 돋았다.
말도 안 돼. 이건 우연일 수가 없잖아.
내가 살던 세계의 산이, 죽고 나서 넘어온 이 세계의 유배지 조상묘 사이에 조각되어 있다는 게, 대체 어떤 확률로 가능한 일인가. 백과사전 한 권을 써도 설명이 안 될 우연이었다. 아니, 이건 우연이 아니라 뭔가의 신호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런데 뭘 알리는 신호인지는, 이 순간의 나로선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뭐 하냐." 곽복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빨리 안 일어나?"
나는 황급히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손바닥에 남은 냉기와 그 미세한 온기의 여운이 아직도 생생했다. 손금 사이사이로 파고들던 그 짧은 온기가, 마치 몸의 일부처럼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원양이 회복되었다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뭔가가 달라졌다는 감각만은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는데, 그게 두려움 때문인지 흥분 때문인지 나 자신도 구분이 안 됐다. 시비의 부축을 받아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도, 눈은 계속 그 석물을 향해 돌아갔다. 표면에 새겨진 명문 같은 것도 있었지만 거리가 있어 읽을 수 없었다. 저게 뭔지, 왜 저기 있는지, 왜 내 고향 산과 똑같이 생겼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정말 우연일까?
산길을 오르는 내내 그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원신 임백의 잔재 기억을 뒤져봐도 저 석물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조상묘 구역을 지나다녔던 기억은 분명 존재했다. 시비들 몇몇이 잡초를 뽑았다는 기억, 곽복이 이곳을 순찰했다는 기억, 심지어 비 오는 날 미끄러졌다는 기억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 석물, 청운봉이 새겨진 그 석물에 대한 기억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니면 원신조차 관심을 둔 적이 없는 것처럼, 기억의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그게 더 불길했다.
내 눈에는 그렇게 선명하게 들어온 것이, 원신의 기억에는 완전히 지워져 있다니.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그 부분만 도려낸 것처럼. 아니면 원신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을 감고 있었던 것처럼.
곽복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지금 이 순간, 저 무식하고 잔인한 관리인에게 뭔가를 들키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없었으니까.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무성의했다. 마치 짐짝을 옮기는 것 같은, 딱 그 정도의 관심.
산 중턱을 넘어서자 유배지로 쓰이는 오두막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낡고 초라한 건물 몇 채가 산자락에 흩어져 있었는데, 저기가 앞으로 삼 년을 보낼 곳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삼 년. 그냥 숫자로 들으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상태로 삼 년을 버틴다는 건 사실상 시한부 선고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방금 그 짧은 접촉이,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이 될지, 나는 아직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