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며칠이 지나면서 인헌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갔지만, 다리에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벽을 짚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다인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폐가를 오가며 물을 갈아주고 상처에 약초를 발라주었는데, 그 시간이 어느새 하루 중 가장 익숙한 일과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죽어가는 사람을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저절로 몸이 폐가 쪽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 이게 습관이 된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된 건지 다인은 스스로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폐가는 여전히 낡고 어두웠지만, 다인이 며칠 사이 이불이며 물그릇이며 이것저것 가져다 놓은 탓에 사람이 사는 흔적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지붕 틈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인헌의 어깨 위로 가늘게 떨어질 때면, 그의 형체가 마치 오래된 그림 속 인물처럼 정지되어 보이곤 했다.
"오늘은 좀 어때요." 다인이 상처 위에 손을 얹으며 묻자, 인헌은 짧게 대답했다. "견딜 만하다." 그 말투가 여전히 딱딱했지만, 처음보다는 확실히 날이 무뎌져 있었다. 다인은 속으로 약초값이며 옷 수선비며 이것저것 셈을 해보다가, 이 남자를 살려두는 데 드는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 다인은 그의 목덜미에 남은 화상 자국을 조심스레 문지르며 약초즙을 바르다가, 손끝이 인헌의 맨살에 스치는 순간 이상한 전류가 팔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짜릿한 느낌이었다. 정확히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한복판을 훑고 지나갔는데, 다인은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손을 거두려 했지만, 그때 인헌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프다." 그가 낮게 말했다. 다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는데, 상처 때문인지 그의 손이 닿은 부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 미, 미안해요. 세게 눌렀나 봐요." 다인이 황급히 손을 빼며 사과했지만, 인헌은 그녀의 손목을 여전히 붙잡은 채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회색 눈동자가 마치 안개 낀 숲처럼 고요하고 깊어서, 다인은 그 시선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손이 생각보다 크고 거칠어서, 이 손으로 검을 쥐었을 거라는 생각이 스치자 다인은 괜히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인헌이 불쑥 물었다. "뭘요?" "이런 수고를. 나는 너에게 아무 보답도 할 수 없는 처지인데." 그 말에 다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 남자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오만함이 아니라 진심 어린 물음이라는 걸 느낀 순간, 다인의 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 그냥 사람이 다치면 돕는 게 당연한 거니까요." 다인이 얼버무리며 대답했지만, 인헌은 여전히 그녀를 놓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라 하였느냐." 그가 되물었다. "네 세계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더냐." "……그런 거 아니에요? 다친 사람 보고 그냥 지나가는 게 이상한 거지." 다인의 대답에 인헌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좁은 폐가 안에서 두 사람의 거리는 손 하나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고, 그 침묵이 어쩐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인헌이 먼저 손을 놓았다. "……알겠다." 그가 짧게 말하며 시선을 돌렸는데, 그 뒷모습에서 다인은 뭔가 더 묻고 싶은 말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한 채 약초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날 오후, 다인은 시장에 나가 마른 나물을 팔며 하루를 보냈는데, 좌판 사이를 지나다니면서도 자꾸 머릿속에는 인헌의 회색 눈동자가 떠올라 손이 헛나갔다. 아니, 왜 자꾸 그 사람 생각이 나는 건지. 다인은 애써 고개를 흔들며 나물 값을 계산했지만, 손님이 건넨 동전을 세다가 세 번이나 다시 셈해야 했다.
* * *
그날 밤, 다인은 몰래 담요 한 장을 더 가져다주려고 폐가에 들어갔다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자던 인헌의 몸이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마에 손을 짚어보니 화상 열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열기가 느껴졌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다인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왜 잠들지 못하고 있어요?" 다인이 묻자, 인헌은 몸을 뒤척이며 낮게 신음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물러가라." 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져 있었고, 그 눈빛에는 평소와 다른 어둡고 뜨거운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다인은 그 시선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태로움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기, 몸이 안 좋으면 말해요. 약초를 더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요." 다인이 다시 다가서며 말했지만, 인헌은 몸을 웅크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되어 있는 게 어둠 속에서도 느껴졌는데, 마치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약초 같은 것으로는……" 인헌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럼 뭐가 필요한데요? 의원을 불러야 해요? 아니면……" 다인의 물음에 인헌은 잠시 침묵하다가, "필요 없다"고 짧게 잘랐다. 그러고는 등을 돌리며 짧게 대답했는데, 그 뒷모습이 유난히 경직되어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뜨거운데 그냥 두면……" 다인이 말을 이어가려 하자, 인헌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다인은 흠칫 놀랐는데, 그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이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평소의 고요한 회색이 아니라, 뭔가 더 짙고 뜨거운, 다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깔이었다.
"……물러가라, 다인."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낮게 떨리고 있어서, 다인은 순간 숨을 죽였다. 이름을 불린 것뿐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지, 다인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알겠어요." 다인은 뭔가 더 물어보려 했지만, 인헌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조용히 담요를 내려놓고 폐가를 나섰다. 문을 나서기 직전, 뒤돌아본 인헌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마치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사람처럼 보여서, 다인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문을 닫고 나서는 순간까지도, 다인의 손목에는 아까 그가 붙잡았던 온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저 사람 몸이 왜 저렇게 뜨거운 걸까. 단순한 열병인 걸까, 아니면……. 다인은 그 생각을 끝맺지 못한 채, 밤하늘의 달빛을 올려다보며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억눌렀다. 별빛이 유난히 차갑게 빛나는 밤이었는데, 그 차가움이 오히려 다인의 뜨거워진 얼굴을 식혀주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 밤, 폐가 안에서 인헌은 홀로 이불을 움켜쥐며 자신의 몸이 낯선 세계에서 서서히 발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다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열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그녀가 알게 되는 날, 지금처럼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을지 인헌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인헌의 뜨거운 이마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고, 그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