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안전실은 학원 서관 지하 삼층에 있었다.
원래는 비상시 물자를 쌓아두는 창고였다고 들었다. 곰팡내와 쇠 비린내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벽에는 물이 스며든 얼룩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고, 천장의 형광등 하나는 깜빡이다 완전히 꺼져버렸다.
두꺼운 강철문 뒤로 학생 수십 명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이를 딱딱 부딪치고 있었고, 누군가는 벽에 얼굴을 처박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가, 곧 삼켜졌다.
이서린은 벽에 기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폐가 제 것 같지 않았다. 들이켤 때마다 목구멍 안쪽이 긁히는 느낌이 났다. 도연이 그녀 옆에 앉아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손등이 축축했다.
"괜찮아?"
도연이 낮게 물었다. 목소리에 억지로 눌러 담은 흔들림이 섞여 있었다.
"안 괜찮아."
이서린은 솔직하게 답했다. 목구멍이 여전히 타들어가는 듯했다. 침을 삼켜도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47퍼센트라는 숫자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 숫자만 선명했다.
<이게 다야?>
속으로 반문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손끝이 떨렸다.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러도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도연이 그 손을 슬쩍 붙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손 떨려."
"알아."
이서린이 짧게 답했다. 더 말을 얹지 않았다. 지금은 설명할 힘조차 없었다.
그때 강철문이 열렸다.
쿵.
무거운 철판이 뒤로 밀리는 소리가 방 전체를 울렸다.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쏠렸다. 몇몇은 숨을 멈췄고, 몇몇은 더 깊이 몸을 웅크렸다.
학원장이었다.
키가 크고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 은발이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고, 눈동자는 회색이었다. 걸음걸이에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학원 전체에 동시에 목소리를 전달하던 그 능력자가 직접 현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평소라면 스피커를 통해서만 듣던 목소리를, 지금은 육성으로 듣고 있다는 사실이 방 안의 온도를 한 뼘 더 내려놓았다.
"모두 무사한가."
낮은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대답 대신 학생들의 두려운 눈빛이 그를 향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학원장은 곧장 이서린 쪽으로 걸어왔다. 발소리가 콘크리트 바닥 위로 또각또각 울렸다. 무릎을 굽히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회색 눈동자가 정면에서 마주 왔다. 그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결계 전역을 뒤흔든 감각. 네가 한 거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이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마른침을 삼켰다.
"'악마의 추적'."
학원장이 그 이름을 정확히 발음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눌러 발음하는 방식이었다.
"세계 어디서든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는 능력. 지금까지는 잠재된 상태였는데, 오늘 강제로 개화됐어."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이서린이 반박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손끝이 다시 떨렸다.
"저절로 그렇게 됐어요. 저는 그냥, 느껴졌어요. 막을 수가 없었어요."
"알아."
학원장이 짧게 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서늘한 감촉이 열기를 조금 식혔다. 손바닥에서 스며드는 냉기가 두피까지 퍼졌다.
【고객님의 비강혈증 지수를 측정합니다.】
【현재 수치: 47%.】
숫자를 소리 내어 확인하는 순간, 이서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림창의 문구는 언제나처럼 사무적이었다. 감정 한 톨 섞이지 않은 그 문장이, 지금은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47이라니.>
<처음 봤을 때보다 두 배는 늘었잖아.>
"이 정도 급증은 위험해."
학원장이 손을 거두며 말했다.
"지금은 진정됐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3년 안에 다시 폭발할 거야."
"3년요?"
도연이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지."
학원장이 담담하게 답했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조였다.
"매번 능력을 강제로 쓸 때마다 지수가 쌓여. 다음번엔 이보다 훨씬 빠르게 100퍼센트에 도달할 거고, 그때는 자아를 잃을 수도 있어."
방 안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서린은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손톱 밑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자아를 잃는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그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려 했지만, 상상조차 두려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작은 소리였다.
"신선한 피를 규칙적으로 섭취해."
학원장이 말했다.
"갈증을 억누르려 할수록 지수는 더 빨리 쌓여."
대답은 간단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이서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신선한 피. 그 말이 혀 위에서 쇠맛처럼 굴렀다. 도연을 향해 아직도 참고 있던 갈증이, 그 한 마디에 다시 목구멍 안쪽에서 꿈틀거렸다.
<규칙적으로.>
<그게 사람이야, 아니면 짐승이야.>
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서린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학원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을 펴는 소리가 관절 사이에서 낮게 울렸다. 시선이 방 안 전체를 훑었다. 웅크린 학생들, 갈라진 벽, 깜빡이는 형광등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방 안의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지하에서 벗어난 존재, 그건 윤태석 선생 혼자가 아니야."
방 안이 조용해졌다. 도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팔뚝에 힘줄이 섰다.
"무슨 뜻이에요?"
"확실한 건 아직 없어."
학원장이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그 몸에서 느껴진 힘의 결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어."
학원장의 시선이 이서린을 향했다. 회색 눈동자가 조금 더 깊어졌다.
"그리고 네가 방금 확장했던 감각. 그 안에서 잡힌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
이서린은 순간 서릿빛 감각을 떠올렸다. 3년 전, 어느 날 밤 만났던 존재. 서늘한 시선, 낮게 가라앉은 기척, 살갗을 스치던 냉기. 그 서늘한 시선이 그때와 겹쳤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손끝이 다시 저려왔다. 그날 밤의 감촉이 아직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처럼.
"모르겠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확신이 없었으니까. 다만 무언가 있었다는 것만은,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학원장이 더 말을 이으려던 순간, 강철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빠른 걸음, 끌리는 슬리퍼 소리. 문틈으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노란 플라스틱 안경, 밝은 빨간 머리를 가진 소녀가 문틈으로 들어섰다.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윤채린이었다.
마법사 학생, 학년은 이서린과 도연과 같았지만 늘 교실 뒤쪽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아이였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법이 없어서, 존재감조차 흐릿했던 아이. 지금은 그 흐릿함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저 할 말이 있어요."
채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침착함이 방 안의 다른 누구보다 단단하게 느껴졌다.
학원장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말해."
채린은 잠시 도연과 이서린을 번갈아 보았다. 안경 너머 갈색 눈동자에 무언가 결심이 서려 있었다. 손가락이 자신의 소매 끝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아래에 있는 사람, 우리 아버지예요."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숨소리마저 멈춘 듯했다.
"그리고 저는, 일주일 전부터 어머니와 연락하고 있었어요."
"어머니?"
이서린이 되물었다. 목이 마른 채로도 그 말은 또렷하게 나왔다.
채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을 뜬 순간,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 아버지 안에 있는 존재들 중 하나가, 제 어머니예요."
그 말이 방 안에 떨어진 순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연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렸다. 이서린은 채린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아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혼자 삼키고 있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그 세 갈래 중 하나가……"
도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라는 거야?"
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버지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척 중에, 어머니의 것과 닮은 게 있었어요. 매일 밤 그 느낌을 확인했어요. 무섭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철문 밖 복도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쾅!
벽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콘크리트 가루가 문틈으로 흩날려 들어왔다. 학생들 사이에서 낮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학원장의 시선이 즉시 문 쪽으로 향했다. 회색 눈동자가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시간이 없어."
그녀가 이서린과 도연을 번갈아 보았다. 그다음 채린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채린이 알고 있는 것, 지금 당장 필요해."
복도 끝에서 다시 한번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훨씬 가까웠다. 벽을 타고 진동이 전해졌다. 발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서린은 숨을 삼켰다. 목구멍 안쪽에서 여전히 갈증이 꿈틀거렸지만, 그보다 더 크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강철문 저편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