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욕망의 무기화' 수업은 본관 3층 끝자락, 계단을 두 번이나 꺾어 올라가야 나오는 외진 강의실에서 진행됐는데, 나는 준서를 따라 자리를 잡으면서도 계속 그 과목 이름의 불길함을 곱씹고 있었다. 욕망을, 무기로 만든다니. 도대체 뭘 배우겠다는 건지 짐작도 안 갔지만, 이 학원의 커리큘럼이 대체로 그런 식이었으니 이제 와서 놀랄 것도 없었다.
강의실 안은 이미 학생들로 가득했고, 다들 신입 교사에 대한 기대와 소문으로 들썩이는 분위기였는데, 그 소문의 내용은 대략 '스물여섯이나 됐을까 싶은 나이인데도 학원 최고 등급의 마법사'라거나 '전 왕실 소속이었다더라', '어느 대귀족가의 숨겨진 딸이라더라' 같은, 확인되지 않은 억측들이었다. 옆자리 애가 "그 나이에 최고 등급이면 진짜 괴물 아니야?" 하고 소곤거렸고, 나는 그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봤는데,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수업이 그저 강태호의 학창시절 한 페이지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딱히 특별할 게 없는, 흘러가는 하루 중 하나로.
종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을 본 순간, 나는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
연한 갈색 머리를 뒤로 넘겨 하나로 묶은 여자였는데, 이목구비가 또렷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이었고, 걸음걸이에는 이상하게 절도가 있으면서도 여유가 배어 있었다. 나이는 스물일곱여덟쯤 되어 보였지만... 그 얼굴을, 나는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얼굴의 원형을 알고 있었다. 눈매의 각도, 콧대가 살짝 꺾이는 지점, 입꼬리가 웃을 때 유독 왼쪽으로만 올라가는 버릇까지.
어머니였다.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사람이 아니라, 어머니 본인이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어머니는 마흔이 넘은 내 어머니가 아니라, 스물일곱쯤 되어 보이는 훨씬 젊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겨를도 없이 그저 얼어붙은 채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이상한 박자로 뛰기 시작했고, 손끝이 저릿해지는 감각이 들었는데, 그건 마치 몸속의 피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잃고 거꾸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욕망의 무기화'를 담당하게 된 서인아입니다" 라고 그녀가 담담한 어조로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 목소리는... 틀림없었다. 삼십일 년을 들어온 목소리였다. 아침마다 "태호야, 밥 먹어" 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 시험 성적표를 받아 들고도 화를 내는 대신 한숨만 짧게 쉬던 그 목소리, 병원 복도에서 내 손을 잡고 "괜찮아, 다 잘될 거야" 하고 속삭이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말도 안 돼'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어머니가 여기, 이 낯선 세계에, 그것도 이토록 젊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저 책상 위에 놓인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서인아라는 이름의 여자를 계속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준서가 뭔가 필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조차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녀의 시선이 강의실을 훑다가, 잠시 내 자리에서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혹은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확인해버린 듯한 그런 흔들림이었다.
'설마 나를 알아본 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곧 시선을 돌려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짧은 눈맞춤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수업 시간 내내 그녀는 몇 번이나 내 쪽을 흘끔거렸는데, 그때마다 뭔가 확인하려는 듯한, 혹은 부정하려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수업 내용은 욕망의 종류를 분류하고 그것을 마력으로 치환하는 기초 이론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솔직히 한 글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칠판에 뭔가를 적는 그녀의 손끝, 뒤로 돌 때마다 살짝 흔들리는 옷자락, 말을 잠깐 멈추고 숨을 고르는 그 사소한 순간들까지도 전부 눈에 들어와서 박혔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사이,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일어나지 못했다. 준서가 옆에서 "야, 강태호, 안 가?" 하고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결국 그가 어깨를 한 번 툭 치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먼저 자리를 떴다.
강의실에 나와 그녀만 남았을 때, 강의실 안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창밖에서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고, 칠판에 남은 분필 가루가 형광등 불빛 아래서 미세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는데, 그 발걸음 소리 하나하나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태호야" 하고 그녀가 낮게 내 이름을, 아니 강태호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은 정말로 내 어머니였다. 목소리의 떨림, 그 안에 섞인 조심스러움,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두려워하는 그 이중적인 감정까지 전부.
"어머니...?" 하고 되묻는 내 목소리가 떨렸는데,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이내 냉정을 되찾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지 마. 아직은" 하고 그녀가 주변을 살피며 낮게 말했다. 강의실 문 쪽을 흘끔 보고, 창문 밖을 한 번 확인하고, 그제야 다시 나를 바라보는 그 신중함이 어쩐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원래 어머니는 신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요컨대,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랬다. 나는 웹소설 속 인물 강태호의 몸에 들어왔고, 어머니 역시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세계에 서인아라는 이름의 이십대 교사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떻게... 왜 여기 있는 거예요" 하고 물었지만, 그녀도 나만큼이나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짧게 누르며 뭔가를 정리하려는 듯한 몸짓을 보였는데, 그건 원래 어머니가 골치 아픈 문제를 마주했을 때 하던 버릇 그대로였다.
"나도 몰라. 눈을 떠보니 이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었어. 기억은... 원래 서인아라는 사람의 것도 조금씩 섞여 있는 것 같고" 하고 그녀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왠지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안도감은, 적어도 이 낯선 세계에 나 혼자만 던져진 게 아니라는 사실에서 왔고, 불안감은...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가슴 한켠이 이상하게 뛰었다는 것에서 왔다. 어머니를 어머니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이 낯선 얼굴, 낯선 나이, 낯선 이름이 자꾸만 그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서인아 씨의 기억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하고 물으려던 찰나, 그녀가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그건 나중에. 지금은...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게 먼저야" 하고 그녀가 다시 한번 문 쪽을 살피며 말했는데,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상황의 심각성을 더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때, 시야 한켠에 문구가 떠올랐다.
[알림: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대상과의 첫 접촉.]
[대상: 서인아]
[시스템 '마미의 쿡 시스템'의 상세 정보가 곧 공개됩니다.]
...대상이 어머니였다니. 나는 그 알림을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는데, '설마' 하는 불길한 예감이 확신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스템의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마미의 쿡 시스템'이라니, 그 이름 자체가 이미 대상이 누구인지를 노골적으로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이 시스템이... 어머니를 이용하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왜냐하면 그 짧은 추측만으로도 손끝이 차갑게 식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태호야, 왜 그래" 하고 그녀가 내 표정을 보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는지, 그녀는 내 어깨를 잡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얼굴이 왜 이래, 어디 아파?"
왜냐하면 다음 순간 떠오른 시스템 창의 제목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성격을 이미 짐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션 1: 어머니의 첫 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