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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특별한 자리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파티가 열리기 전날, 저택 앞에 도착한 화려한 마차를 보고 확실히 알게 됐다. 문양이 새겨진 문에서 하인들이 줄줄이 내려 짐을 옮기는데,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마차 한 대에서 저 많은 짐이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트렁크가 몇 개, 모자 상자가 몇 개, 게다가 화장품 상자로 보이는 것까지 따로 들려 나오는 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마차인가, 이삿짐 수레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훨씬 더 화려한 모습을 한 차유리였다. 귀금속이 목과 손목과 귀에 겹겹이 걸려 있어서 걸을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고, 짙은 화장 아래 얼굴은 예전의 순수한 인상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와인색 곱슬머리는 정교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고, 초록빛 눈동자는 나를 발견한 순간 반짝하고 빛났는데, 그 빛이 반가움이 아니라는 걸 나는 대번에 알아챘다. 사람이 몇 년 사이에 저렇게 변할 수 있나, 아니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저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못 알아본 건가.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서인아! 이게 얼마 만이야!" 목소리는 반가운 척했지만 시선은 이미 내 옷차림을 위에서 아래로 훑고 있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속도까지 눈에 보일 지경이라, 나는 저 시선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깨에서 시작해 소매를 지나 허리춤, 그리고 치맛단까지. 낡은 드레스를 어떻게든 고쳐 입은 나와, 최신 유행이 분명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유리 사이의 격차가 너무 뚜렷해서 나는 그 시선만으로도 얼굴이 화끈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반가움을 가장한 채 사람을 위아래로 훑는 재주가 있었네, 저 친구가. 예전에는 이런 재주가 없었을 텐데, 아니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지도. "오랜만이야, 유리야. 백작부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어. 축하해."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고 입꼬리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그 힘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웠을지는 스스로도 짐작이 갔다. 이런 걸 사교라고 부르는 건가. 사교라기보다는 서로 눈치를 보며 칼을 숨기고 있는 협상 자리 같았다. "고마워. 그런데 서인아, 너 그 드레스... 혹시 어머니 드레스를 고쳐 입은 거니?" 웃으며 던진 그 질문에 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 정확히 맞혔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한 번 크게 뛰더니 그대로 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바느질 자국을 숨긴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주변에 서 있던 하녀들 몇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유리는 그 반응을 즐기는 듯 입꼬리를 더 끌어올렸다. 저것 봐라, 저 웃음. 사람을 놀리는 데 저렇게 예쁜 미소를 쓸 수 있다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어머, 부끄러워하지 마. 요즘 시골에서는 그런 게 유행인가 봐?" 비아냥이 뚜렷한데도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 포장하는 저 화법이 얼마나 능수능란한지, 나는 감탄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이게 진짜 그 유리인가, 함께 사과 훔쳐 먹던 그 애가 맞나 싶었지만 눈앞의 현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함께 담을 넘다가 무릎이 까져서 서로 부축하며 집에 돌아왔던 그날의 유리와, 지금 내 앞에서 짤랑거리는 귀금속을 두르고 서 있는 이 유리는 같은 이름을 쓰는 게 이상할 정도로 다른 사람 같았다. 사람이 자리가 바뀌면 이렇게까지 변하나. 아니면 원래 이런 걸 감추고 있다가 자리가 바뀌자 슬슬 꺼내는 건가. "그러게, 시골 유행은 나도 잘 모르겠네." 나도 최대한 태연하게 받아쳤다. 속으로는 이가 갈렸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런 걸 두고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는 거겠지. 그런데 어쩌겠는가, 지금 여기서 발끈해봤자 손해 보는 건 나뿐이었다. "내가 좋은 걸 하나 준비했어. 이번 파티에 입고 나오면 딱일 것 같아서." 유리가 손짓하자 하녀 하나가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상자를 열자 안에서 나온 건 화려한 청록색 드레스였는데,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재질에 세밀한 자수까지 놓인 물건이었다. 옷감을 스치기만 해도 손끝에서 부드러움이 느껴질 것 같았고, 자수 무늬는 촛불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을 냈다. 이게 진짜 나한테 선물이라고? 이런 걸 그냥 준다고? "이거... 정말 나 줘도 되는 거야?" 의심이 들었지만 눈앞의 옷감이 너무나 화려해서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이런 드레스라면 파티에서 눈에 띄지 않을 방법이 없겠지만, 동시에 이런 드레스라면 형편이 어려운 시골 영애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나한테? 유리가 나한테 이런 호의를 베풀 이유가 있나, 조금 전까지 사람 옷차림을 두고 놀리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선물을 주는 게 앞뒤가 맞나.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당연하지. 우리 친구잖아." 유리의 웃음이 그 순간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저 미소 안에 뭔가 숨겨진 게 있다는 걸 직감했지만, 지금 당장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이런 게 불안이라는 감정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 진단을 내려봤지만 그 진단이 뭘 해결해주는 건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데뷔하려던 계획이 이 드레스 하나로 완전히 뒤틀리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파티에서 이거 입고 와. 내가 특별히 소개해줄 사람도 있으니까." 소개해줄 사람이라는 말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조용히 스며들어 눈에 띄지 않는 채로 혼처를 찾겠다는 계획이, 이제는 유리의 손바닥 위에서 완전히 재편되고 있었다. 소개, 그것도 특별히. 저 단어가 좋은 뜻으로 쓰인 적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나 되짚어봤지만 딱히 좋은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대할게, 유리야." 겉으로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 드레스를 받아야 하나, 거절해야 하나 계산이 복잡하게 얽혔다. 거절하면 유리의 호의를 무시한 게 되고, 받으면 뭔가 함정에 걸려드는 느낌이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손해를 덜 볼까, 머릿속으로 몇 가지 경우를 굴려봤지만 어느 쪽도 딱히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다른 드레스도 없는 처지에, 이런 고급 드레스를 마다할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결국 실리가 이겼다. 함정이 있어도 일단 밟고 봐야 다음 수를 생각할 수 있는 법이니까. 결국 나는 그 상자를 받아 들었고, 유리는 마차를 타고 떠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남겼다. "참, 그 드레스 뒤쪽 매듭이 조금 특이하게 되어 있어. 입을 때 조심해야 해." 조심하라는 말이 왜 이렇게 불길하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마차가 멀어지는 걸 보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는데, 손에 든 상자가 갑자기 천 배는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매듭이 특이하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 그냥 장식이 화려한 걸 말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뭔가 이상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걸 경고하는 건가. 상자를 열어 다시 드레스를 살펴봤지만, 겉으로 보기엔 그저 아름답고 값비싼 옷일 뿐이었다. 뒤쪽을 뒤집어서 매듭 부분을 손으로 더듬어봐도 별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굳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났을까. 아무 뜻 없이 던진 말이라면 그렇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을 텐데, 유리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 뜻 없이 하는 말은 없었다. 파티는 이제 이틀 뒤였고, 나는 여전히 그 드레스에 무슨 함정이 숨겨져 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상자를 든 채 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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