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내 몸에 무공서가 있었다니

4화

이틀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하늘은 그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뒷산 계곡에서 밤낮없이 수련에 매달렸다.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그의 유일한 벗이었고, 달빛과 별빛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그는 수백 번, 수천 번 같은 초식을 반복했다. 손바닥은 이미 터져 굳은살이 잡혔고, 발밑의 바위는 그의 보법에 닳아 매끈해졌다. 몸이 무너질 듯 비틀거릴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지금 쓰러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 한 생각이 그의 몸을 다시 채찍질했다. 박만복이 몇 번이나 계곡을 내려와 그를 만류했다. "도련님, 이러다 몸이 먼저 상합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셔야 합니다." 강하늘은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갈라졌으나 눈빛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박 노야. 사흘 후면 제사실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안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데, 이 몸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박만복은 그런 강하늘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그가 알기로 파범경의 벽은 타고난 자질이 없이는 뚫기 힘든 경계였다. 수백 년간 강씨 가문의 수많은 후손들이 그 벽 앞에서 무너졌고, 오직 극소수만이 그것을 넘어 진정한 무인으로 인정받았다. 강하늘의 육체는 그 벽을 넘기에 명백히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셋째 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박만복은 작은 목함을 품에 안고 강하늘의 방문을 두드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련님, 파범단이 도착했습니다." 강하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밤새도록 앉아 호흡을 다스리던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빛이 스쳤다. 그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박만복의 손 위에 놓인 목함은 낡고 투박했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목함을 열자, 검붉은 빛을 띤 작은 단약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표면에서는 미세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코끝을 스치는 향만으로도 강렬한 약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한 쇠 냄새와 함께 은은한 약초의 향이 섞여 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짐승의 숨결처럼 단약 스스로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했다. 강하늘은 그 단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것을 복용하면..."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단전 안의 잠재된 기운을 강제로 끌어올려줄 것입니다." 박만복이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다만 그 대가로 혈맥에 큰 부담이 갈 것이니, 도련님의 체질이 이를 버텨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파범단이라는 이름 그대로, 범인의 경계를 억지로 부수는 약입니다. 그 부작용으로 혈맥이 뒤틀리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박만복은 말을 잇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강하늘이 대신 그 말을 끝맺었다. "...예." 박만복이 낮게 대답했다. "이 약은 본디 절정에 이른 무인이 벽을 넘지 못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것입니다. 도련님처럼 근골이 여문 상태가 아닌 이가 복용하는 것은... 사실 무리한 도박입니다." 강하늘은 목함 속의 단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으나, 동시에 이것이 실패한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도박이라는 말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없었다. 파범경의 벽 앞에 맨몸으로 서는 것과, 목숨을 걸고 이 단약에 기대는 것—둘 중 하나였다. "...가주님께서도 이것을 두고 밤새 고민하셨습니다." 박만복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제가 파범단을 구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주님께서는 밤새 서재에 홀로 앉아 계셨습니다. 몇 번이나 저를 불러 이것을 되돌리라 하셨지요. 도련님께 무리가 갈까 염려하시며, 몇 번이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압니다." 강하늘이 목함을 닫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도."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그 담담함 속에는 이미 각오를 다진 자의 서늘함이 배어 있었다. 박만복은 그런 강하늘의 얼굴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날 아침, 강하늘은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조상 제사실 앞에 섰다. 하늘은 아직 회백색 어둠을 다 벗어내지 못한 채였고, 찬 공기가 살갗을 스칠 때마다 옷깃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붉은 기와로 지어진 그 건물은 강씨 가문의 시조를 모신 신성한 장소였으며, 수백 년간 이곳에서 수많은 후손들이 자신의 경지를 시험받아왔다. 건물의 기둥 하나하나에는 세월의 흔적이 짙게 새겨져 있었고,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바람도 없는 새벽에 스스로 흔들리며 낮고 서늘한 소리를 냈다. 문 앞에는 이미 대장로를 비롯한 여러 원로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겁고 냉정했으며, 그 냉정함 속에는 오랜 세월 이 의식을 지켜온 자들 특유의 초연함이 배어 있었다. 그 곁에는 강경호와 강범도 서서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경호는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하게 서 있었고, 그의 눈빛은 강하늘을 향해 있었으나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강범의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강하늘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형님,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물론... 제사실에서 나오시면, 우리 약속도 잊지 마시고요." 그의 목소리에는 정중함을 가장한 조롱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형의 실패를 이미 확신하고 있는 듯한 여유가 그 미소 뒤에 숨어 있었다. 강경호가 곁에서 나지막이 헛기침을 했으나, 그것이 만류의 뜻인지 동조의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시선은 강범을 지나쳐, 문 안쪽의 어둠으로 향해 있었다. 그 어둠 속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어둠을 넘지 못하면,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이 여기서 끝난다는 것. "강하늘." 대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어 마치 오래된 석비에서 울려나오는 듯했다. "제사실 안에서는 조상들의 기운이 그대의 경지를 시험할 것이오. 그 시험을 통과하려면, 오로지 그대 자신의 힘으로 파범경의 벽을 넘어야만 하오. 우리는 다만 결계를 유지해 그대의 안전을 보장할 뿐, 그 이상의 도움은 줄 수 없소." 대장로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강하늘의 눈을 응시했다. "이 시험은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그 방식이 바뀌지 않았소. 조상들의 위패 앞에서, 오직 자신의 근골과 내공만으로 벽을 넘어야 하는 법.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소. 만약 그대가 그 벽을 넘지 못한다면, 그대는 강씨 가문의 적통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될 것이오." 그 말에 몇몇 원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에는 이미 결과를 짐작한 듯한 냉담함이 서려 있었다. 강하늘은 그 냉담한 시선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품속에 숨겨둔 파범단의 존재를 대장로도, 강범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이 시험의 유일한 변수였다. 강태웅이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나이 든 무인의 손이라기보다는, 자식을 앞에 둔 아버지의 손이었다. "하늘아." 그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애써 억누른 감정이 배어 있었다. "무엇이 되든, 너는 내 아들이다. 그 사실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 말 한마디에 강하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지금까지 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늘 엄격하고 거리를 두었던 아버지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자식을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강하늘은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쳤으나, 그는 애써 그것을 억누르며 제사실의 문 앞으로 걸어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겁게 땅을 눌렀다. 문이 서서히 열렸다. 안쪽에서는 오래된 향과 서늘한 기운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그 향은 단순한 제향(祭香)의 냄새가 아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응축된,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든 듯한 무겁고 서늘한 향이었다. 그 향을 코끝으로 느끼는 순간, 강하늘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가 문턱을 넘기 직전, 대장로와 다른 장로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결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은은한 청색 빛이 제사실의 외벽을 감싸며 퍼져나갔고,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건물의 윤곽을 따라 흐르며 하나의 거대한 방벽을 형성했다. 그 안에서는 조상들의 위패가 놓인 제단이 은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위패들 사이로 흐르는 그 기운은 눈으로 보이지 않았으나, 강하늘의 피부에 와닿는 압박감만으로도 그 존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강하늘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굳은 얼굴, 강범의 조소, 원로들의 냉담한 시선—모든 것이 그의 눈에 각인되듯 새겨졌다. 그 짧은 순간,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을 떠올렸다. 뒷산 계곡에서의 밤낮없는 수련, 박만복의 걱정스러운 눈빛, 그리고 지금 자신의 품속에 숨겨진 단약 하나.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쌓여온 것이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다.' 그리고 그는,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이 닫히는 순간, 등 뒤에서 무거운 울림이 들려왔다. 쿵-. 그 소리와 함께, 제사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것은 지금까지 그가 느껴본 어떤 기운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게였다. 마치 수백 개의 거대한 바위가 그의 어깨 위에 동시에 얹히는 듯한 압박이 온몸을 짓눌렀고, 그 압박 속에서 그의 호흡은 저절로 가빠졌다. 조상들의 시험이 시작된 것이었다. 강하늘은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제단 위의 위패들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마치 그를 응시하는 듯했고, 그 빛이 하나둘 모여들어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도 아니었고, 짐승의 형상도 아니었다. 그저 압도적인 기운의 응축체—조상들의 힘이 남긴 잔영이었다. 품속에서 파범단이 담긴 목함이 그의 가슴에 닿아 서늘한 존재감을 알려왔다. 강하늘은 떨리는 손을 옷 속으로 가져갔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가진 유일한 패를 꺼내야 할 때인지, 아니면 조금 더 버텨야 할 때인지—그는 판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뻗기도 전에, 제단 위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그를 향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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